'디스럽션'.
어쩌면 지난 20년 동안 가장 많이 쓰인 경영 용어다. 우리말로 와해성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여러 의미로 쓰인다. 이 개념을 착안한 지 20년이 지난 2015년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 기고문에 “이 개념은 그 인기만큼이나 잘못 이해되고, 원칙은 잘못 적용되기도 한다”고 회고했다. 크리스텐슨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자원이 적은 기업이 기존 기업에 도전할 수 있는 성공 프로세스”인 이것은 기존 경쟁 패턴을 바꾸는 변혁이란 의미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혁신 제품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많은 진정한 아이디어가 걸러져서 사라진다.
특히 기존 상식과 다른 와해성 변화에 우리는 익숙하지 않다. 글로벌 인재 컨설팅사 오저스번트슨은 글로벌 기업의 경영진 가운데 단지 15%만 이것에 익숙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와해성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성공사례가 말해 주는 몇 가지 교훈이 있다.
한 가지 사례는 패블릿이라 불리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합성어다. 첫 패블릿은 2010년에 출시된 5인치짜리 델 스트릭이지만 상업용으로 성공한 첫 사례는 갤럭시 노트 차지다.
정작 처음 제안됐을 때는 조소 거리였다. 이즈음 삼성은 갤럭시 S와 갤럭시 탭이란 스마트폰과 태블릿 라인업으로 잘 나가던 터였다. 갤럭시 S는 4인치, 탭은 9인치 모니터였다. 둘은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보였다.
그러나 5.3인치 폰은 어딘지 어중간했다. 수첩처럼 노트할 수 있는 펜이 달렸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폰이었다. 휴대폰은 5인치 이하라는 업계 불문율이 있었다. 회의 때면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손에 들어오지도 않는 폰으로 어떻게 통화를 하나. 이렇게 커서는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하는 것 외 다른 쓸모가 없다.”
고심 끝에 수첩답게 커버를 붙여 보기로 했다. 언뜻 보기에 작은 수첩 같아 보였다. 수첩으로 생각하고 보니 그리 큰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노트란 이름도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패블릿이란 카테고리에서 비로소 성공한 첫 제품이 됐다.
다른 와해성 사례의 하나는 TV다. 실상 시장 조사가 발단이었다. 정작 켜져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됐다. 대부분 꺼진 채 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화면이 꺼진 채로도 멋져 보일 필요가 있었다.
화면 양쪽에 자리 잡은 큼직한 스피커를 없애자고 했다. 그러자 불문율이 튀어나왔다. TV란 첫째 화질, 둘째 음질, 셋째 사용성, 넷째 모양이라고 했다. 겨우 설득해서 시제품을 만든다. 화면 아래에 스피커 구멍을 내고 V자 받침의 앞 방향으로 흘러가게 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삼성 보르도였다. 흰색 프레임에다 하단에 붉은색 V자 장식으로 포인트를 뒀다. 삼성 TV 디자인은 2006년 보르도 전과 후로 나뉜다. 이런 와해성 혁신은 이후에 아직 없었다.
와해성이란 개념은 우리 주변에 20년 동안 있었다. 만일 오저스번트슨의 조사가 틀림없다면 우리가 와해성에 익숙지 않은 정도로 코로나19에도 준비돼 있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오저스번트슨 보고서의 한 구절은 이렇다.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은 최고 경력을 갖춘 최고경영자(CEO)들조차 혼란과 위기 처리에는 익숙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팬데믹 경영의 길을 와해성 혁신을 놓고 따져봄직도 하다. 이제 와해성은 가끔 필요한 게 아니라 언제고 꺼내 들 수 있어야 하는 그런 혁신 방식이 돼 가고 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