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 평양에 살았다는 봉이 김선달은 한양 부자에게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일화로 유명하다. 사기 행각이 분명하지만 공짜인 강물을 판다는 건 기발한 발상으로 볼 수 있다.
'물 쓰듯 한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흔하다고 생각하는 물을 일찌감치 상품화했다.
에너지업계도 흔한 물을 하나의 자원으로 주목한다. 하천에 흐르는 물은 여름에는 대기보다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이러한 온도 차를 히트펌프를 이용해 냉방 시에는 건물 내 열을 물로 방출해서 실내 온도를 낮출 수 있고 난방 시에는 물로부터 열을 얻어 실내 온도를 높일 수 있다. 물의 비열(4.18)은 공기보다 약 4배 이상 크다. 에너지 축적 능력이 우수하다는 의미다.
북미·북유럽 국가는 1980년대부터 수열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인정하고 지역난방 등에 활용했고, 일본도 1991년부터 수열에너지 활용 관련 기술을 본격 도입했다.
수열에너지는 하천수, 해수, 지하수, 하수, 발전 온배수 등 다양한 형태로 주변에 존재한다. 이를 이용해 건물 냉난방은 물론 수산양식, 농업시설, 하수처리장, 데이터센터 등 산업 시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다. 수열에너지는 환경·경제 효과가 우수하다. 온실가스나 미세먼지 감축은 물론 여름철 실외기에서 내뿜는 도심 열섬현상을 줄이고, 냉각탑도 필요 없어 옥상녹화 등 공간 활용성을 높일 수 있다. 냉각탑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이나 진동 피해도 줄이고, 레지오넬라균 예방 등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정부도 수자원 장점에 주목하고 지난해 10월 관련법을 개정했다. 그동안 '해수의 표층 열을 변환시켜서 얻는 에너지'로 한정한 수열에너지의 범위를 하천수까지 확대했다. 이를 계기로 다양한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기 시작했다.
재생에너지 국제단체(Ren21)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의 최종에너지 소비 가운데 약 51%가 열에너지 형태로 소비된다. 수열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은 에너지 수요를 감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열(스팀)로 만든 전기를 다시 열로 전환해 사용하거나 가스 등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냉난방 등 최악의 비효율 에너지 사용 형태를 개선할 수 있다.
에너지전환 정책인 '재생에너지 3020' 계획은 주로 태양광·풍력 중심 전력에너지 목표로의 공급 확대가 핵심 지표다. 이와 같은 공급 위주 정책은 전력 계통 확충, 주민 수용성 확보라는 난제에 부닥쳤다. 분산에너지이자 공급 대체 효과가 있는 수열에너지가 목표 달성의 중요한 옵션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자료에 따르면 대도시 광역상수도 물공급량 일 800만톤을 수열에너지로 활용하면 2기가와트(GW)의 전력설비 대체가 가능하다.
하천수를 이용한 수열에너지는 국내외 설치 사례를 통해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 주고 있다. 미국 코넬대는 카유가 호수의 심층수를 냉방에 활용, 에너지 소비량을 80% 감축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은 해수뿐만 아니라 하수, 호수, 지하수 등 다양한 수열에너지원을 활용하고 있다. 도시 전체 난방 부하의 44%를 수열이 담당한다. 일본 도쿄도 하코자키 지구는 하천수 활용으로 18%의 에너지를 절감하고 있다.
국내에선 롯데월드타워에 광역 상수도 원수를 이용한 3000냉동톤(RT) 용량의 히트펌프가 설치됐다. 현재 건물 냉방의 10%를 책임지고 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네이버 인터넷데이터센터(IDC), 부산 스마트시티,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지구, 현대차 신사옥 등에 수열에너지 활용이 검토·추진되고 있다.
수열에너지 활용을 확대하는 것은 건축, 기계, 전기 등 종합설비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기술로는 수처리시설, 히트펌프, 열교환기, 축열설비, 시스템 관리기술 등의 성능 향상이 핵심 기술이다. 우리나라는 각 분야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대용량(150RT) 히트펌프 공정기술, 친환경 수처리기술, 에너지융합 운영기술, 성능평가 등 기술 개발과 보급에 필요한 정책 지원도 필요하다. 하천수 이용 허가 기준, 건축물 냉방설비 설치 기준, 재생에너지설비 인증 기준, 열공급의무화(RHO) 등 제도 기반도 구축돼야 한다.
물은 가장 평등하며 깨끗한 에너지자원이다. 우리나라는 대도시 지역의 경우 4대 강의 풍부한 수량이 있고, 국토 삼면은 바다와 접하고 있다. 이제는 수열에너지의 효과 높은 활용이 도시 경쟁력을 좌우하고 에너지 산업의 새로운 길을 열어 줄 것이다.
김성수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에너지융합 PD sskim@ketep.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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