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관계를 얘기할 때 흔히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거론한다. 지난주 출시된 모바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퀴비(Quibi)', 스프린트와의 합병 완료로 미국 이동통신 강자로 떠오른 T모바일이 이런 관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T모바일이 패밀리플랜에 가입한 고객에게 퀴비를 무료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우연이지만 퀴비 출시 시기와 스프린트와의 합병으로 미국 이동통신 시장에서 가입자가 1억명 이상인 강력한 사업자로 재탄생한 것이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것이다.
퀴비는 드림웍스 최고경영자(CEO) 출신 제프리 캐천버그와 휴렛팩커드(HP) CEO 출신의 미국 정보통신기술(ICT) 거물 멕 휘트먼이 공동 창립한 새로운 모바일 OTT다. '빠르게 한입 물다(quick bites)'는 의미처럼 10분 안팎의 영상을 모바일로 제공하는 '오직 숏폼 비디오 모바일 OTT'다.
퀴비는 서비스 출시 이전에 17억5000만달러 투자를 끌어냈다. 광고 역시 1억5300만달러 선 판매까지 기록했다. 프로젝트에 동참한 인물들의 면모를 보면 1990년대 초 NBA 드림팀과 같은 정도라고 한다.
다른 OTT와의 차이점은 우선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처럼 기존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이용하지 않고 10분 안팎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숏폼 비디오 형식으로 제작한다는 것이다. 기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다른 OTT와 달리 지하철이나 마켓으로 이동하면서 모바일로 시청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둘째 모바일 시청자의 시청 습관과 행태에 맞게 '턴스타일(Turnstyle)'이라고 부르는 기술을 적용해 콘텐츠를 제작한다. 지금처럼 콘텐츠를 휴대폰에 맞게 축소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를 만든다. 휴대폰을 세로 방향이나 가로 방향으로 사용할 때 콘텐츠를 방향별로 적합하게 따로 제작한다. 기존 OTT와 차별화한 전략으로 모바일에 맞는 사용자환경(UI)과 콘텐츠로 시청자에 새로운 사용자경험(UX)을 제공한다.
이동하면서 시청하기에 적합한 숏폼의 콘텐츠를 모바일로 제공한다는 것은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과의 경쟁보다 매일 수천만명이 사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과의 경쟁을 의미하기 때문에 비관 시각도 있다. 그러나 캐천버그는 “할리우드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45년 넘는 경험 결과 좋은 품질의 콘텐츠를 시청자가 외면하는 사례는 없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성공 여부는 콘텐츠에 달려 있다고 본 것이다.
2017년부터 넷플릭스를 고객에 무료로 제공하며 경쟁자로부터 가입자 유치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T모바일은 퀴비와 손잡고 경쟁사와의 차별을 추진하고 있다. 전체 트래픽 가운데 61%가 모바일 비디오라는 점에서 퀴비가 아주 적합한 파트너라 여기고 이른바 플랫폼인플랫폼(PIP) 형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퀴비 입장에서는 시장조사 결과 68%에 가까운 사람들이 퀴비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상황에서 T모바일과의 협력은 서비스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거래다.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양사 모두 완벽한 결합이라고 평가하며 산업 자체를 바꿀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T모바일만 이런 PIP를 통한 협력 관계로 경쟁력 확보에 힘쓰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디즈니플러스가 출시할 때도 1위 업체 버라이즌이 가입자에게 무료로 디즈니플러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서비스 초기에 가입자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됐다. AT&T는 HBO맥스, 컴캐스트는 피콕으로 각각 플랫폼과 OTT 간 아름다운 공생 및 치열한 경쟁을 보여 주고 있다.
“플랫폼은 킹이지만 킹메이커는 콘텐츠”라는 캐천버그의 말처럼 과연 퀴비가 T모바일을 미국 이통 시장 킹으로 만들 것인가.
국내에서도 아름다운 공생과 치열한 경쟁을 통한 고품질·고품격 서비스를 기대하는 고객이 있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