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박사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대통령 코드 <8>마가렛 대처(하)-원칙, 소신 그리고 강인함

[박선경 박사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대통령 코드 <8>마가렛 대처(하)-원칙, 소신 그리고 강인함

마가렛 대처의 정치시험 난도는 높았다. 국민 생활을 볼모로 한 노조의 기세는 등등했다. 영국 정부는 노조와의 싸움에서 매번 무릎을 꿇었다. 영국 통치는 정부가 아니라 노조가 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적자경영에 허덕이는 공기업은 뻔뻔했다. 정부에 손을 벌려 구멍 난 곳을 메웠다. 일하지 않아도 정부는 연금, 실업수당, 국민보험을 알뜰히 챙겨줬다. '꿀복지'에 국민은 자생력을 잃었고 국가 경쟁력은 마비됐다.

“국가는 버는 것보다 많이 써서는 안 된다.” 대처는 국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정부가 나서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민간의 자율과 책임을 강조했다. '작은 정부론'이다. 대처의 총리 취임 선언은 강력했다. “나는 확신의 정치인이다. '아마(Maybe)'하고 아무 상관이 없다. 영국병을 고치려면 강력한 개혁과 자유 시장경제체제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확신의 정치는 전쟁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는 영국령 포클랜드(Falkland)를 기습 점령했다. 포클랜드는 영국에서 1만4000㎞, 아르헨티나에서 480㎞ 떨어진 섬이다. 포클랜드는 영국 어업과 남극탐사를 위한 전진기지로, 영국계 주민 1000여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레오폴드 갈티에르는 인플레이션, 실업, 정치 현안 등 국내 문제로 골치를 앓았다. 국민의 시선을 외부로 돌려야 했다. 포클랜드다. 영국이 머나먼 작은 섬 포클랜드를 위해 군사력을 모으지 않을 거라는 계산 아래.

기습 공격에 영국 수비대는 이틀 만에 항복했다. 대처는 아르헨티나 도발에 비상내각회의를 소집했다. 영국 내각은 대처에게 군대를 파병할 예산이 없다고 했다. 1976년 IMF 구제금융 관리 아래 허리띠를 졸라맸던 영국이다. 전쟁할 여윳돈이 있을 리 없다. 대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영국은,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찔렀던 그 옛날 대영제국이 아니었다. 영국 함대를 파견해도 섬을 되찾지는 못할 거라고 수군거렸다. 작전에 성공하지 못하면, 자신과 영국은 국제 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

대처는 단호했고, 신속했다. “전쟁이다!” 대규모 전투 부대를 포클랜드에 급파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포클랜드는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다. 아르헨티나가 이기는 싸움이었다. 영국군은 전력을 다해 싸웠고 아르헨티나군 사기는 점점 떨어져 갔다. 전쟁은 74일간 계속됐다. 마침내 영국이 승리했다. 아르헨티나 군정은 패전 후 무너졌다.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은 헤이그 대사를 영국에 보냈다. 포클랜드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하라고 제안했다. 적절한 선에서 보상받고 섬을 포기하란 의미였다. 대처는 헤이그에게 반문했다. “당신네 미국은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했을 때 일본에 협상을 구걸했습니까? 그 섬이 미 본토에서 수천 마일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그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포기했습니까? 영국은 반드시 원칙을 지킬 것입니다. 나는 매일매일 전투를 치러왔습니다. 많은 남자가 나를 과소평가해왔습니다. 이번에는 절대 그들이 예상하는 대로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대처를 과소평가한 '그들'은 노조와 싸워 번번이 진 허약한 정치인들이었다. 영국이 병들도록 방치한 타협의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은 대처 뒤에서 '평민출신' '식료품 집 딸'이라며 '여성 지도자'를 무시했고 조롱했다. 대처가 가진 자산이라곤 원칙과 소신, 강인함이었다. 대처는 물러서지 않았다. 무능한 귀족 정치인들에겐 없는, 대처 만의 정치 자산이 영국을 구제했다.

[박선경 박사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대통령 코드 <8>마가렛 대처(하)-원칙, 소신 그리고 강인함

박선경 남서울대 겸임교수 ssonno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