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초연으로 무대에 올려졌던 뮤지컬 '최후진술'이 2020년에 들어 삼연으로 돌아왔다.
처음 최후진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대 위에 등장하는 배우가 겨우 두 명이라는 사실이었다.
매니악 한 뮤지컬이고 취향에 맞지 않으면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어린 시절에 보았던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린 것도 극에 등장하는 배우의 수가 극히 적다는 이유에서였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그래도 배우가 세 명은 등장하는데 뮤지컬 최후진술에는 배우가 두 명만 출연한다고 하여 보기도 전에 겁부터 먹었던 기억이 난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적막감과 심오함에 압도당했던 당시의 여운이 강하게 남아있어 뮤지컬 최후진술 역시도 무겁고 어려운 주제의 공연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뮤지컬 최후진술은 겨우 배우 두 명이 등장하는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적막하다거나 심오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후세계라는 배경마저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유쾌하고 매력적인 뮤지컬이었다.
시놉시스만 본다면 로마교회의 종교재판에서 이단이라 지목받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살기 위해 자신이 주장한 '지동설'을 부정한다는 내용으로 재미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그 내용은 전체 극에서 약 10% 정도의 지분만을 차지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연기하는 배우 한 명과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연기하는 또 다른 배우 한 명으로 구성되는 페어 형태의 뮤지컬인데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연기하는 배우는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프톨레마이우스, 존 밀턴 등의 멀티 배역을 소화해야만 하는 극한의 뮤지컬이기도 하다.
스무 개가 넘는 넘버가 끊임없이 진행되는데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연기하는 배우는 극의 거의 대부분 시간 동안 퇴장하지 못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연기하는 배우는 정말 쉴새 없이 무대 뒤로 퇴장하지만 그때마다 다른 배역으로의 변신을 꾀하기 위해 의상을 바꿔 입어야 한다.
정적이라거나 대화만 주고받는 형식의 극도 아니다. 꽤 많은 영역에서 역동적이고 고난도의 춤 동작이 곁들여지는 넘버가 다수이다.
특히나 극의 중간에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넘버도 있는데 관객은 무대 위 두 배우 중 한 명의 배우를 선택해야만 한다. 관객이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연기하는 배우를 선택하는 경우는 '아임 어 댄서'라는 넘버가 진행되고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연기하는 배우를 선택하는 경우에는 '비극 작가' 넘버가 진행되는 차이를 보인다.
이렇게 극의 관객의 선택으로 넘버가 바뀔 수 있기에 뮤지컬 최후진술의 모든 넘버를 보려면 1회의 관람으로는 불가능하다. 적어도 2회 이상의 관람을 해야만 넘버 전부를 감상할 수 있는데 이것도 관객의 선택이 동일한 인물이 된다면 모든 넘버를 볼 수 없다.
출연하는 배우가 두 명뿐이기에 어떤 배우의 공연을 보느냐에 대한 느낌도 크게 차이가 난다. 여러 명의 앙상블과 진행되는 공연의 경우 주연 배우의 캐스팅이 달라지더라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대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지만 뮤지컬 '최후진술'은 두 배우의 호흡과 케미에 따라 극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에 캐스팅된 배우가 4명, 윌리엄 셰익스피어 역에 캐스팅된 배우가 4명이므로 마치 서로 다른 16가지의 뮤지컬을 만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뮤지컬 '최후진술'이 가진 강점일 테다.
현재 진행 중인 삼연은 제작사 자체가 바뀜에 따라 전체적인 극의 스타일이나 요소요소의 디테일이 많이 변화했기에 초연과 재연을 감상했던 관람객이라면 삼연을 맞이 한 뮤지컬 '최후진술'의 달라진 점을 찾아보는 것도 재관람의 재미로 느껴질 것이라 추측된다.
단 두 명의 배우만이 무대 위에 오름에도 불구하고 무대가 꽉 차게 느껴지는 것은 다년간 손발을 맞춰 온 배우들의 관계성에서도 알 수가 있다. 2017년의 초연부터 2018년의 앙코르 공연, 2019년의 재연 그리고 이번 삼연까지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으로 캐스팅된 이승현과 윌리엄 셰익스피어 역으로 캐스팅된 유성재의 페어는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물론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시나리오가 있기에 다른 페어 배우들의 공연 또한 이색적이고 참신하다. 형 페어, 동생 페어, 크로스 페어 등으로 불렸던 페어 공연인 만큼 젊은 갈릴레오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열연도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주고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564년생의 동갑내기라는 사실에서 착안된 창작 뮤지컬 최후진술은 천동설과 지동설 뿐만 아니라 철학과 사상, 종교의 역사적 이야기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콘서트 형태의 특별 공연까지 진행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뮤지컬 최후진술이지만 매주 금요일마다 예정되었던 특별 공연은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에 발맞추어 아쉽게도 중단된 상황이다.
그러나 본 공연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니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감염증 예방에 주의하면서 공연장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현장의 발열 체크와 이용자 명부 작성에도 협조하면서 서로가 안전한 관람 환경을 만들어 간다면 침체된 문화계에도 희망의 빛이 비칠 것이다.
전자신문인터넷 K-컬처팀 오세정 기자 (tweet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