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연구소가 독립 정부 출연연구기관 '한국재료연구원'으로 새출발한다. 재료연구소 연구원 승격과 독립 운영 규정을 담은 '과학기술분야 출연연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976년 한국기계금속시험연구소로 시작해 44년, 2007년 한국기계연구원 부설로부터 13년 만이다.
이정환 재료연구소장은 재료연 독립 법인화에 대해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물론 포스트 코로나 대응에 필요한 바이오소재 연구를 비롯해 소재를 기반으로 각종 국가·사회 문제 해결에 보다 빠르게,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확보한 것이 가장 큰 의미”라 말했다.
이 소장은 국가 소재 연구개발(R&D) 컨트롤타워로 한국재료연구원의 역할과 책임을 우선 강조했다. “그동안 출연연이 저마다 주력 연구 분야에 필요한 소재 연구를 각기 부가적으로 해왔습니다. 이제 한국재료연구원이 출범하는 만큼 소재 R&D에서 소재산업 육성, 소재 응용과 융합 연구까지 아우른 소재 종합 전략을 기획하고 대한민국 소재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겠습니다.”
이 소장은 독립 법인화를 계기로 글로벌 이슈인 코로나19 대응 항바이러스 재료와 항균 소재 등 바이오소재를 신규 핵심 연구분야로 육성할 뜻을 밝혔다. “정부 출연연이라면 국가 사회적으로 시급한 난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어 “항균, 항바이러스 소재 연구에 가용 자원을 집중해 감염병 같은 사회 문제에 상시 대응할 수 있는 소재 기술력을 단기간에 확보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재료연구소 독립 법인화 제도 마련 주역에서 이제 한국재료연구원의 위상과 기능, 국가 소재 연구방향 재정립에 나서는 이정환 소장에게 한국재료연구원의 역할과 책임, 미래 비전을 들어봤다.
- 재료연구소 '원' 승격 독립화 법안이 통과됐다. 독립 법인 한국재료연구원은 언제 출범하나
▲ 앞으로 6개월 동안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먼저 '한국재료연구원 설립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독립 법인화 법안 공표 후 30일 이내에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주관으로 '한국재료연구원 설립위원회'를 구성한다. 이 설립위에서 정관 마련을 비롯해 독립 연구법인 출범을 위한 실무작업을 진행하고, 초대원장을 선임한다. 올 해 안으로 한국재료연구원 공식 출범을 예상하고 있다.
-한국재료연구원 비전과 목표는 무엇인가
▲ 비전과 목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소재강국 실현'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첨단소재 원천기술 개발'과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한 '소재 국산화'를 양대 목표로 지속 추진한다. 분산된 국내 소재분야 연구역량을 결집하고, 산·학·연 협력 구심점 역할에 나선다.
재료연구원 출범은 우리나라가 소재강국으로 도약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로 단소재 중요성과 일본 의존 문제의 심각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첨단소재 자립화를 놓고 국가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어 이러한 소재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혁신성장도 어렵다. 정부가 혁신성장 동력 핵심기술 190개를 분석한 결과, 50% 이상이 소재기술 뒷받침이 필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미래는 첨단소재 기술력에 달렸다.
- 기존 재료연구소와 비교해 어떤 게 달라지나
▲ 재료연구소는 부설기관으로 국민이나 지역사회, 유관 산학연에 미치는 존재감이 적었다. 연구원 승격과 독립화는 보다 도전적인 연구풍토, 자율적 연계협력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 무엇보다 소재 R&D 퍼스트 무버로써 국민이 체감하는 소재분야 원천기술 개발과 실용화를 이뤄내 국민에게 인정받고, 구성원은 자긍심을 높여가는 행복한 연구기관으로 바뀔 것이다.
-'바이오소재'를 독립 법인 신규 집중 연구분야로 제시했다. 왜 바이오소재인가
▲ 한국재료연구원은 소재융합 연구를 중심으로 국가 소재R&D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한다. 융합소재는 여러 단일소재와 소재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기능을 발휘하는 소재로 바이오소재는 탄소복합재와 함께 대표적 융합소재다.
특히 이번 코로나19로 국가사회 문제 해결에 있어 출연연 역할이 더욱 부각됐다. 정부 출연연은 당면한 국가사회 재난에 과학기술 기반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바이오소재 연구를 재료연구원 핵심 연구분야로 중점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미 수년전부터 바이오소재 연구역량을 키워왔고, 일정 정도 성과도 내고 있다.
-바이오소재 R&D 성과 목표는
▲ 세계 초미의 관심사인 바이러스 및 세균 감염 진단 기술과 병원체 제거 소재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하겠다.
진단소재 기술로 현재 '초고감도 다중 질병진단용 바이오센서 칩'을 개발하고 있다. 3차원 고밀도 금속 나노구조체의 플라즈몬 공명 현상을 이용한 것으로 극미량에 의한 패혈증, 조류 인플루엔자 감염 여부를 현장에서 2시간 이내에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다.
'공조용 병원체 제거필터'는 코로나19, 결핵, 메르스 등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공조시설에서 차단 제거하는 기술이다. 현재 건물 공조시설에 사용하는 필터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제거에 한계가 있다. 이 기술은 저온 플라즈마, 다공성 세라믹, 저온 촉매 소재를 활용한다. 저온 플라즈마가 다공성 세라믹을 통과하며 오존을 발생하고, 이 오존이 공기를 타고 유입된 병원체를 살균 또는 비활성화 하는 원리다. 병원은 물론 지하철 등 다중 이용시설에 설치하면 감염병 유행 차단에 유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그동안 재료연구소가 거둔 대표적 R&D 성과는 무엇인가.
▲ 재료연구소 대표 성과는 9개가 세계 최초 및 세계 1등이다. 강판이나 폴리머 등 유연소재 표면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할 수 있는 '광폭 표면 처리용 선형 이온빔 소스 및 공정 기술', 1m 상당의 폭을 세라믹 분말로 코팅할 수 있는 '세라믹 코팅 기술', 풍력발전의 핵심인 터빈 블레이드의 성능을 평가하는 '이축피로 시험기술', 잘 휘어지고 잘 복원되며 인체에 무해한 '플렉시블 타이타늄', 초경량소재 시장에서 활용될 '난연성 마그네슘', 기존 기술 대비 2배의 강도에 70% 정도로 가격을 낮출 수 있는 '타이타늄 제조기술', 분자 지문이라는 라만 신호를 획기적으로 증폭시킬 수 있는 '금속 나노구조체', '다종 세라믹 3D프린팅 신기술' 등이다.
-독립 법인화를 위해 사전 준비를 많이 해왔다고 들었다. 어떤 것들이었나.
▲ 기계연 부설기관으로 활동해 온 지난 12년 동안 독립법인화는 재료연구소의 가장 큰 현안 가운데 하나였다. 부설이 아닌 독립 출연연으로 갖춰야 할 연구 역량과 기관운영 역량을 착실히 다지고 축적해왔다.
외부로는 정부, 지자체, 국회, 언론, 지역단체 등 산학연관 이해 관계자와 빠짐없이 소통하며 독립법인화 공감대 형성에 노력했다. 내부에선 독립법인 위상에 부합하는 연구역량과 기관 경영역량을 갖추는데 주력했다.
이 결과, 지난해 정부 주관 재료연구소 독립법인화 타당성 조사에서 우수한 점수로 타당성을 인정받았다. 설립 초기 기계산업용 금속소재 연구기관에서 종합소재연구기관으로 기틀을 마련했고, 세계 1등 기술 9건을 비롯한 세계적 연구성과를 창출했다.
2007년 기계연 부설화 이후 최근까지 인력은 0.8배, 연구비는 1.4배 증가한데 반해 기술이전 실적은 5.1배, 보유특허는 3.5배, SCI논문 게재는 1.9배 증가했다. 부설 기관으로 규모는 작지만 빼어난 성과를 올리는 강소형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받은 '기관종합평가'도 '우수'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 25개 정부출연연 가운데 '우수' 평가를 받은 기관은 6개다. 부설기관 6개 가운데 유일하다.
- 원 승격, 독립 법인화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무엇이었나.
▲ 우리나라 완제품 시장 경쟁력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이 완제품을 만들 때 필요한 소재는 대부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수출 규제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소재 R&D 중요성을 간과했다. 단기 성과에 치중해 10년 이상 걸리는 중장기 소재 R&D를 등한시했다. 소재 연구는 분산돼 있고 구심점이 될 기관도 없었다. 재료연구소가 한국재료연구원으로 승격, 독립 법인화돼야 했던 배경이다.
지난해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는 국가 차원에서 소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재료연구소 원 승격은 세 가지 관점에서 필요하다.
첫째, 정부정책과의 부합성이다. 정부는 국정 5개년 계획, 과학기술기본계획, 산업기술혁신계획, 최근 수립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 등 각종 과학기술정책과 산업육성정책에서 소재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육성해야 하는 핵심 분야로 빠짐없이 제시하고 있다. 재료연구소가 위치한 경상남도와 창원시도 지역 제조업 재도약과 지역기술혁신 거점 마련을 위해 재료연구소 원 승격을 강력히 희망했다.
둘째, 외부여건의 성숙이다. 세계 동향과 국내 산업 발전 측면에서 첨단소재의 중요성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미 우리나라 산업은 첨단소재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로 전환됐고, 첨단소재나 소재 기술력 없이는 성장이 불가능한 구조다. 소재산업의 중요성과 위상에 걸 맞는 소재분야 독립 연구법인을 운영할 여건이 충분해진 것이다.
셋째, 기관 독립의 적시성이다. 지난해 일본의 경제보복 사태에서 보듯이 첨단소재 무기화는 현실이 됐다. 첨단소재기술 자립화를 위해서는 현재 20여개 기관에 분산돼 있는 개별 소재연구를 연계하고, 협력의 장으로 유도하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소재 자립화와 소재 연구역량 결집을 위해 부설 재료연구소의 원 승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 독립 연구기관 대비 부설 연구기관의 애로점이라면.
▲ 부족한 연구 인력과 이로 인한 소재 연구개발의 한계다. 부설기관은 독립기관 대비 필요 정규인력(TO) 배정이 적다. 현재 박사급 연구원이 약 350명 정도 필요한데 현재 210명 선이다. 정부 소·부·장 R&D 정책 중심에 재료연이 있어야 하지만 독립법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외돼 왔다. 단적으로 소재부품특별법에 의거해 만든 소재부품통합연구단에 재료연구소는 독립 법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포함되지 못했다.
- 재료연 독립화 주창의 시작에서 국회 통과까지 과정은.
▲ 지난해 일본의 기습적 수출 규제 조치가 사회적 공론화의 시발점이 됐지만, 독립법인화 주창과 논의는 12년 전부터다. 정부차원에서 2008년에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재료연구원 설립을 검토한 바 있고, 정부차원의 논의는 이후에도 계속 있었다. 2014년 창원상의가 독립법인화 필요성을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을 계기로 지역 유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관심과 지원이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국회 차원에서는 창원을 지역구로 둔 박완수 국회의원과 고 노회찬 국회의원이 2017년 각각 재료연구소 독립법인화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 소재 분야가 워낙 광범위하고, 출연연 가운데 상당수는 특정 소재 연구를 기능으로 갖고 있어 재료연 독립화에 비판적 견해도 있는데.
▲ 재료연구소 원 승격과 독립법인화로 자체 소재 연구기능이 침해당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그럴 의도도 없지만 정부 예산 구조상 가능하지도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 출연연 가운데 20여개가 각기 소재 분야 연구를 부분적으로 수행하고 있지만 재료연구소 독립법인화에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기관은 극소수로 알고 있다.
재료연구소 소재 연구는 다른 출연연과 명확한 차별성을 갖고 있다. 재료연구소는 국내 유일의 종합소재연구기관으로 소재 전 분야가 연구 영역이다. 또 기초원천 연구에서 실용화까지 전 영역을 다룬다.
재료연구소 독립 법인화는 소재 연구에 대한 확고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국가 소재연구 방향을 제시하고, 산·학·연 소재 연구협력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지금처럼 분산된 R&D 체계로는 국내 소재연구 역량 결집이 어렵다.
연구기관 간 소재 연구에서 연계협력을 강화하고 시너지를 창출해 국가 소재기술 도약의 길로 함께 나아가자.
창원=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
<이정환 소장은>
한양대 정밀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석사, 홍익대에서 금속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재료연구소 융합공정연구부장과 산업기술지원본부장, 선임연구본부장, 기계소재부품기업지원사업단장, 부소장을 거쳐 2018년부터 소장을 맡고 있다.
한국소성가공학회장, 대한기계학회 경남지회장을 지냈고, 현재 경남금형협동조합 자문위원장, 한국엔지니어연합회 창원회장, 한국산업기술인회장, 경남경제혁신추진위 전문위원, 창원국가산단 경영자협의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급 논문 53편을 썼고, 신소성 가공 기술(2002), 마그네슘 합금 정밀 단조기술(2015), 과학기술로 본 세상이야기(2016) 등 5권을 출간했다. 과학기술훈장 도약장(2016년), 대통령 표창과 경상남도 과학기술대상(2010년), 대한금속재료학회 기술상(2007), 산업부장관 표창(2006)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