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n번방' 규제가 인터넷 족쇄가 안 되려면

김시소 기자
김시소 기자

이석우 전 카카오 대표는 지난 2015년 카카오톡 아동음란물 유포를 방치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대표는 2019년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을 내리기 전에 이 전 대표를 기소한 근거가 된 법률이 '통신 비밀' '표현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며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무리한 수사와 기소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일명 'n번방 금지법'으로 불린 법안이 20대 국회 마지막에 무더기 처리됐다. 인터넷기업은 불법촬영물에 대한 조치와 망 안정성 유지에 대한 의무를 지게 됐다.

인터넷업계는 제대로 된 논의 과정이 없었다고 반발했지만 20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법안을 밀어붙였다. 과방위 법안소위에서 전체회의 통과까지 하루, 전체회의에서 법제사법위원회 통과까지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과방위 평균 법안 처리율은 20대 국회 평균을 밑돌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첨예한 이해관계와 부작용이 내포된 법안이지만 '사회적 요구'라는 명분으로 전광석화처럼 처리했다.

공은 입법을 주도한 정부로 넘어갔다. 입법 과정에서 부실한 부분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보완해야 한다. 그 깊이가 만만치 않다.

우선 사전검열 가능성을 없애고 판단을 사업자에 미루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전기통신사업법은 불법촬영물에 대한 기업의 기술·관리 조치를 의무화했다. 언뜻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불법촬영물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법이 정한 불법촬영물의 기준 가운데 하나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콘텐츠와 데이터가 오가는 인터넷 플랫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것을 걸러내는 조치를 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가 공개정보만 대상이라며 검열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사업자 입장에서는 플랫폼에 흐르는 콘텐츠 전체를 보지 않으면 무엇이 불법인지 걸러낼 재간이 없다.

사업자가 무리한 규정에 허덕이지 않게 최소 범위에서 당위성만 부여하는 것이 실효가 있다. 이미 국내 사업자는 신고에 의한 삭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범죄 발생 시 수사기관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콘텐츠제공사업자(CP)에 망 안정성 의무를 부과, 망중립성 훼손이 불가피하게 됐다. 인터넷기업이 자사 서비스를 최고로 유지하는 것은 최우선 목표로,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 망중립성은 문재인 대통령이 내건 공약이지만 이 정부 들어와 이를 후퇴시키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입법 취지처럼 글로벌 기업에 대한 역차별 교정에 국한돼야 한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