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줬을 때

[ET단상]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줬을 때

지금은 국민 건강과 생활을 위협하는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지만 조선 후기 백성들에게는 두창(천연두)이 가장 무서운 질병이었다. 감염률과 사망률이 높은 데다 낫더라도 얼굴에 깊은 흉터를 남기는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당시 한글학자이자 실학자이던 지석영은 부산 제생의원에서 서양식 두창 예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꼬박 20일을 걸어 부산까지 갔다. 그곳에서 해군 군의관으로부터 배우고, 종두 접종을 위한 우두의 원료를 구해와 시행한 것이 바로 종두법이다.

1880년에는 제2차 수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후 고종에게 발명 진흥 제도 기관의 설립 필요성에 대한 상소를 올렸다. 나라가 부강하려면 산업을 일으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유능한 인재들에게 과학기술 교육을 시행하는 한편 그들에게 특허권과 출판권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고종도 크게 환영하고 즉시 법령을 반포·시행할 것을 명했다. 그러나 불안한 정세 속에서 추진 동력은 얻지 못했다. 1908년에 어렵게 '한국 특허령'이 공포·시행됐지만 1910년 강제 병합으로 발명 특허는 일제에 예속될 수밖에 없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에 최초의 산업재산권 법률인 '특허법'이 공포됐지만 이때도 미 군정 체제 아래에서 미국식 특허제도가 도입됐다.

우리 특허제도 확립은 1961년에 특허법이 전면 개정되면서부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이때 특허와 발명을 특허법·실용신안법·의장법 등으로 구분해 각각의 법을 정립했으며, 이것이 현재 산업재산권과 특허법의 근간이 됐다. 1977년에는 이전까지 상공자원부 외국(外局)으로 존재하던 조직을 특허청으로 독립해 오늘날 특허출원을 가장 많이 하는 5개 국가 특허청, 즉 'IP5'의 일원으로 성장했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지난달 발표한 국제출원 통계 보고서에 한국은 특허 5위, 디자인 2위, 상표 13위를 각각 차지하는 지식재산 강국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전 세계가 K-방역에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특허청도 발 빠르게 '코로나19 내비게이션'을 내놓아 화제를 모았다. 4억5000여만건에 이르는 전체 특허 정보 가운데 코로나19 진단·치료·방역과 관련된 5500여건의 정보를 공개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를 벤치마킹해 자체 포털을 만들기로 하고 도움을 요청했으며, 중국과는 코로나19 특허 정보 분석 작업을 공동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한국은 단순히 지식재산 부자에 그치지 않고 지식재산의 공유·활용을 선도하며 미래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안내자가 되고 있다. 2016년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이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예고하며 '유연한 지식재산 제도'를 가장 비중 있게 다룬 이유도 미래 시장에서는 지식과 정보가 부를 창출한다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특허청은 이미 특허·실용신안·상표·디자인의 신속한 심사·심판을 통해 지식재산을 보호하는 역할을 넘어 그 활용과 확산·공유를 견인하는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왔다. 여기에 더해 인공지능(AI) 창작물, DNA 권리, 신기술의 초연결성 등 새로운 지식재산이 출현하는 환경 변화 속에서 다양한 국제 표준과 규범을 선점해야 할 변곡점에 서 있다.

이제는 그 위상과 내용에 걸맞은 명칭으로 부를 때가 됐다. '특허'에만 갇히지 않고 국가 지식재산의 가치를 키우는 혁신자로서 기능할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해야 할 시점이다. 그 정체성에 부합하는 이름을 불러 줬을 때 지식재산의 꽃도 더욱 탐스럽게 만개할 수 있을 것이다.

나경환 단국대 산학부총장 khna@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