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닫힌 철문이 열리고 중무장한 경비가 단백질 블록이 담긴 카트를 끌고 들어온다. 그다지 식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짙은 흑색에 마치 '양갱'처럼 생긴 단백질 블록은 꼬리칸 거주민에게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미리 접한 우리는 안다. 단백질 블록의 정체를.
드라마로 리메이크된 넷플릭스 설국열차에도 어김없이 단백질 블록을 배급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만일 단백질 블록의 주재료가 바퀴벌레라는 사실이 알려졌다면 꼬리칸 혁명의 시발점은 배급 축소가 아닌 단백질 블록 그 자체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에서는 수만마리 바퀴벌레가 단백질 블록 제조기로 들어가는 장면이 큰 충격을 줬다. 바퀴벌레라는 혐오대상이 주는 시각적 효과가 컸을 뿐 그 자리에 귀뚜라미가 있었다면 현실에서도 활발히 연구가 이뤄지는 대체 식량자원과 별다를 게 없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2013년 5월 곤충을 유망한 미래 식량자원으로 선정했다. 높은 단백질 함유량은 물론이고 다양한 영양분을 골고루 갖췄다. 기존 축산업 대비 사료도 적게 들고 효율성도 높다. 같은 양의 사료를 먹는다면 귀뚜라미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은 소의 12배에 이른다. 번식력은 물론이고 기르는 데 필요한 사육공간도 작다.
곤충은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거의 없다시피 한 친환경 식품으로 손꼽힌다. 소나 돼지 등 가축을 기르면 비료와 분뇨 등에서 메탄, 이산화질소 등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축산업을 통해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체 배출량 18%에 육박한다. 세계 단백질 소비량이 늘어날수록 지구 온난화도 가속화되는 셈이다. 반면에 곤충은 소, 돼지 등 가축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100분의 1에 불과하다.
세계 각국에서는 미래 식량 위기에 대응해 다양한 식량 곤충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미국 인바이로플라이트, 네덜란드 프로틱스BV, 캐나다 엔테라피드, 프랑스 인섹트, 남아프리카공화국 애그리프로틴 등 식량곤충 개발과 사육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도 등장했다.
국내에서는 경상북도가 미래 단백질 공급원 확보 등 식량 위기 대응 차원에서 곤충산업 육성에 나섰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제기되는 식량안보 문제도 곤충산업 육성으로 해결한다는 복안이다. 앞서 경남과학기술대는 경남도기술원과 협력해 식용곤충을 이용한 요리책자까지 발간했다. 농가에서도 고부가가치 미래 소득원으로 각광받는 추세다.
굳이 폐쇄된 열차 안이 아니라도 식량곤충으로 만든 음식이 일상적으로 식탁 위에 오를 날이 머지않았다. 이왕이면 거무튀튀한 양갱 모습이 아닌 먹음직스럽게 플레이팅된 곤충식(食)을 즐길 수 있길 기대해본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
'설국열차' 속 미래 식량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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