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가 개원 초기에 하루 평균 30건 넘는 법안을 발의했다. 역대 최다 법안이 발의된 20대 국회 기록을 경신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 나온다.
발의 법안이 빠른 속도로 늘면서 국회의원 입법 활동이 양적 경쟁에 치우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20대 국회처럼 무더기 법안 폐기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9일 17시 기준 21대 국회에 접수된 법안이 302건을 기록했다. 법안 접수가 시작된 이달 1일에만 60건이 발의된 이후 꾸준히 증가하면서 열흘도 안 돼 300건을 돌파했다.
이 같은 추세는 지난 20대 국회를 뛰어넘는 속도다. 2016년 5월 30일부터 법안 접수를 시작하던 당시 첫날 접수 법안은 52건이었다. 20대 국회에선 100건이 접수되기까지 닷새가 걸렸지만 21대 국회는 사흘 만에 이를 달성했다. 300건 시점은 더 당겨졌다. 20대 국회에서 19일째가 되어서야 300건이 접수된 것과 비교하면, 21대 국회는 두 배 빠른 속도다.
법안 접수 건수는 국회가 새롭게 구성될 때마다 크게 늘고 있다. 역대 법안 접수 현황을 보면 17대 7489건, 18대 1만3913건, 19대 1만7822건, 21대 2만4141건으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정치권은 21대 국회에서는 20대를 넘어서는 '법안 홍수'가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당론 차원에서 추진하는 법안과 개별 위원이 1호 법안 이후 후속으로 준비하고 있는 법안, 여기에 각 의원이 국회사무처 법제실에 문구 작성을 요청한 법안까지 포함하면 증가 폭은 더욱 클 것으로 관측된다.
활발한 입법 활동은 좋지만 상당수 법안은 '실적 쌓기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처리 가능성이 희박한 법안까지 무분별하게 발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20대 국회는 전체 2만4141건 법안 가운데 8799건이 처리돼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7대 3766건, 18대 6178건, 19대 7429건에 비해 가장 많은 법안을 처리했지만 발의 법안 수가 워낙 많아 처리율(37%)은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형식적인 법안이 많아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개원 초기에 의원 이름을 알리기 위한 홍보성 법안을 다수 접수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대 국회의 경우 1~300번 법안 가운데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14건(4.6%)에 불과하다.
발의 법안 수가 많아지면서 한 번 폐기된 법안이 수정, 재발의돼 다시 발의 규모를 키우는 악순환도 벌어지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현실성이 떨어지거나 단순히 실적을 쌓기 위한 법안 발의는 의원들 스스로 자제할 필요가 있다”면서 “의원실이 직접 법안 문구를 작성하지 않고 법제실에 맡기는 등 편의주의 발상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