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과학기술과 대학 혁신

[월요논단]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과학기술과 대학 혁신

권위 있는 해외기관 평가로 한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유추할 수 있다. 자연과학 분야 학술지 네이처 그룹의 '네이처인덱스'는 5월 말 한국특집호에서 '하향식의 재발견'이라며 한국이 정부 주도 연구개발(R&D) 투자로 정보통신기술(ICT) 등에서 세계적 리더가 됐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진단을 위해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첫 4개 업체가 모두 하향식으로 추진된 정부 과제 지원을 받은 게 좋은 사례로 꼽혔다. 네이처인덱스는 “한국은 2016년 8위에서 2020년 9위로 순위가 한 단계 낮아졌지만 중국의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가운데 한국은 대부분 국가보다 연구 역량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대학 평가기관 THE와 QS는 이달 초 일주일 간격으로 각각 '대학순위'를 발표했는데 네이처인덱스 기사에 고무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듯 대학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국내 대학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를 얻은 서울대가 각각 64위 및 37위에 머무른 데 비해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 대학은 약진했다. 아시아권 1위인 중국 칭화대는 각각 23위, 15위를 차지했다. 결과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대학은 '학계 평가'와 '논문 피인용 수'에서 제자리걸음이었다. 논문의 양에 비해 질적 수준이 떨어지고, 세계적 연구 성과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들 2개 사례를 살펴보면 과학기술계가 앞으로 연구 방향에 대해 매우 진지한 반성과 혁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난달에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이하 혁신법)이 드디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혁신법은 제안 이유에 '국가연구개발 체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명시한 것 같이 부처별로 다르게 적용해 온 복잡한 R&D 규정을 통일시켜 행정 효율성을 높이고 연구자가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R&D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혁신법은 상향식 과제 기획을 원칙으로 하고, 성실 실패를 인정했다. 과학기술계가 기대하는 내용이다. 물론 연구자의 자율과 책임이 강화된 만큼 혁신적 성과를 창출해야 하는 연구자의 의무도 커진다.

과학기술계가 앞으로 하향식 투자로 이뤄 낸 성과를 뛰어넘고 발전하기 위해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변화해야 한다. 한 예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전 세계에서 연구자들이 관련 연구 결과를 쏟아냈지만 한국인 저자의 논문 성과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현재까지 출판이 완료된 2020년 논문 5229건 가운데 한국인이 저자에 포함된 논문은 김빛내리 교수(IBS RNA연구단) 연구팀이 발표한 코로나19 유전자 지도가 셀지에 등재된 단 1건의 성과뿐이다. 왜 우리나라의 대학 순위는 국가 경쟁력보다 낮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순발력 있는 이슈에서도 눈에 띄는 논문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지 세밀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은 싱가포르 난양대 총장은 도약의 비결로 '좋은 교수를 선발해 최고로 지원하는 것'을 꼽았다. 창업 성과가 뛰어난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 총장 또한 “연구 잘하는 교수를 지원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우리 대학은 좋은 학생을 뽑는 데 몰두했을 뿐 좋은 교수 영입과 그들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지원에 소홀히 한 건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가장 혁신적이어야 할 대학조차 연공서열 문화에 젖어 탁월하고 우수한 연구자에 대한 파격적 지원을 주저하고 평등을 추구한 것은 아닌지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일년수곡 십년수목 백년수인'(一年樹穀 十年樹木 百年樹人). 1년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는 일, 10년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일, 평생 계획으로는 사람을 심는 일이 각각 최선이다. 한 번 심어 한 번 거두는 것이 곡식이고, 한 번 심어 열 번 거두는 것이 나무이며, 한 번 심어 백 번 거둘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명재상 관중의 어록을 모은 관자에 나오는 옛글로,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기본이 되는 말이다.

대학 혁신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시도를 해봐야 하는 일이지만 우수한 연구자를 선발하고 적극 지원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옳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계 내부에서 서로 간 평가에 대한 신뢰를 쌓고 질적 평가를 위한 여러 변화를 시도한다면 다른 문제도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mk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