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유통산업발전법에서 '발전'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산업의 진흥과 성장보다는 대기업에 대한 단편 규제와 소상공인을 위한 시혜성 지원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발전법인지 규제법인지 가늠조차 어려운 정도다.
애초 이 법은 유통산업의 효율 진흥과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는 한편 건전한 상거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제정됐다. 그러나 2010년 출점 제한을 시작으로 몇 차례 개정되면서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 의무휴업 등 대기업을 옥죄는 규제 법안으로 변모했다.
대형마트 규제가 이어진 10년 동안 세상은 변했고, 국내 유통산업의 지형도 달라졌다. 소비 시장을 주름잡던 대형마트는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시선은 아직도 10년 전에 머물러 있다.
이번 21대 국회가 발의한 유통법 개정안에는 출점 규제를 연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에까지 무차별 침투, 상권 일대를 고사시키고 소상공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내용만 보면 2010년 법안인지 2020년 법안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은 새벽배송과 로켓배송은 이젠 일상이 됐다. 2010년 25조원 규모이던 온라인쇼핑 거래액도 134조원을 넘어섰다. 소비 채널의 주류가 온라인쇼핑으로 옮겨 간 지 오래지만 시대 흐름과 동떨어진 오프라인 유통 규제만 되돌이표다.
출점을 무차별 규제해야 한다는 개정안의 취지가 무색하게 정작 대형마트가 새롭게 문을 연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오히려 올해에만 롯데마트 16개점이 문을 닫는다.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한 실증 없이 기계처럼 반복되는 규제는 시장의 피로감만 키웠다.
새 개정안에는 다른 내용이 담겨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급변할 유통산업의 구조 발전을 뒷받침할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점포 풀필먼트 개념이 없던 시절에 오프라인 마트로서 받아 온 영업시간 규제가 온라인 배송에까지 적용하는 게 맞는지도 다시 따져 봐야 할 일이다.
유통산업을 서민 친화형 이미지를 구축하는 포퓰리즘 정책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 소상공인에겐 근본 성장책을 제공하고 유통산업 구조 발전과 경쟁력 강화에 보탬이 되는 진정한 유통산업 발전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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