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인권, 공익 등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 표현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그러나 최상위 개념이 내포한 의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해석 또한 분분하다.
망 중립성도 하나라 생각한다.
오프라인에서 표현의 자유가 온라인에서는 망 중립성이라는 단어로 너무나 확실하고 간단하게 설명된다. 그러나 개념 해석에서 정부·사업자·소비자 관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AT&T가 타임워너를 인수한 이후 마케팅을 적극 전개하며 지난달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HBO맥스를 출시했다. AT&T 가입자에게는 '스폰제 요금제'를 적용하며 데이터 요금을 면제하는 '제로레이팅'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스폰서 요금제는 지난 2014년 AT&T가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한테는 비용을 받고 콘텐츠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데이터 사용을 무료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탄생됐다. 스폰서를 받은 특정한 서비스나 콘텐츠를 사용할 때 사용한 데이터 양을 본인에게 허용된 데이터 총량에서 제외해 주는, 즉 무료 제공하는 '제로레이팅'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스폰서 요금제를 출시할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는 제로레이팅은 비차별 접근이라는 망 중립성에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적지 않은 논란을 유발했다. 그러나 정책 이념을 달리하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제로레이팅은 소비자에게 혜택이 주어진다는 명분 아래 문제 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바마 정부가 수립한 강력한 규제의 망 중립성 원칙도 폐지했다
스폰서 요금제에서 AT&T가 HBO로부터 망 사용료를 받고 HBO맥스 가입자에게는 제로레이팅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였다면 망 중립성 위배 가능성으로 논란이 됐을 것은 물론이다. 더 큰 이슈가 되는 것은 AT&T가 HBO를 인수해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HBO맥스가 AT&T에 대가를 지불한다 하더라도 동일한 회사 내에서의 거래는 회계상 문제가 내재돼 있고 망 중립성에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으로부터 제기된다.
제로레이팅과 망 중립성 이슈의 본격화는 T모바일이 제로레이팅을 적용한 '빈지 온' 프로그램을 도입한 이후다. 서비스 사업자나 콘텐츠 사업자도 기술 조건 및 적합성만 맞으면 이 빈지 온 프로그램에 가입, 대가 없이 제로레이팅을 적용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넷플릭스, 유튜브, 훌루, HBO 등이 프로그램에 가입했다.
T모바일과 콘텐츠 사업자 입장에서는 가입자 확보와 서비스 경쟁력이 강화되고, 소비자는 원하는 콘텐츠나 서비스를 데이터 용량과 관계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제로레이팅은 보는 시각에 따라 견해를 달리한다. 사업자 입장, 예를 들면 T모바일 '포켓몬고'처럼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대 시각에서 보면 제로레이팅은 인터넷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누기 때문에 불공정 경쟁을 하게 되며, 이것이 바로 비차별성의 망 중립성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슈가 되고 있는 AT&T HBO맥스와 T모바일 빈지 온을 통한 제로레이팅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사업자 입장에선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 그것도 동일한 회사 내에서의 거래이지만 후자는 대가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정한 서비스다.
이에 따라 제로레이팅이 주는 소비자 편익 크기와 비차별성 위반 불공정 경쟁으로 발생한 손실 크기로 인한 망 중립성 논쟁이 지속될 것이다.
국내에서도 망 사용료에 대한 네트워크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 분쟁이 심화돼 정부 중재를 넘어 법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비록 앞에서 거론한 사례와는 다른 듯 보이지만 궁극으로 망 중립성 원칙과 소비자 편익이라는 차원에서 봐야 할 것이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