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삼성이 제대로 붙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소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스텝은 꼬이고 덩달아 셈법도 복잡해졌다. 결국 한쪽은 '명분'을, 다른 한쪽은 '실익'을 놓고 다투는 모양새다. 검찰은 다급하다. 2년여를 수사해 더 물러설 곳이 없다. 검찰 자존심이 걸렸다. 삼성은 절박하다. 구속된다면 그룹경영에 막대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이 부회장 안위는 둘째 문제다. 쓸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해야 한다. 대국민 사과쯤은 대수도 아니다. 기소와 구속만은 막아야 하는 절체절명 상황이다.
일전일퇴 양상이다. 최근 양창수 검찰수사심의위원장은 삼성 현안회의에서 빠지기로 최종 결정했다. 양 위원장이 핵심 피의자 가운데 한 명인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친분 관계라는 배경 때문이다. 편파적일 수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앞서 삼성은 기습적으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 판단을 요청했다. 검찰은 허를 찔렸다는 반응이었다. 삼성은 검찰이 작정하고 기획수사 형태로 옭아맨다고 본 것이다.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후폭풍도 불가피하다. 검찰은 과잉 수사였다는 몰매를 맞을 것이고, 삼성은 총수 없는 불안한 경영을 이어가야 한다. 검찰, 삼성 모두 사활이 걸렸다. 그만큼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불가피하다. 이만한 빅뉴스가 없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관심 대상이다. 정치와 여론이 개입하기에는 사안도 너무 커져 버렸다. 이제는 온전히 법에 맡겨야 한다. 당장 이달 26일 열리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분수령이다. 따져보면 일련의 과정이 '공정성'과 맞물려 있다.
'공정(公正)'의 사전적 정의는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바른 상태를 일컫는다. 흔히 쓰는 말이지만 사실 모호하다. 특히나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사고에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주변 분위기부터 선입견과 편견까지 개입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정을 부르짖지만 정말 공정했는지는 각자가 처한 입장에 서면 다를 수밖에 없다. 대통령까지 나서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구나 관전자는 당사자만큼 절박함이 떨어진다. 본인 입맛에 맞게 쉽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공교롭게 공정은 힘의 역학 관계와 맞물려 있다. 약자보다는 강자에 시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 권력이 집중될수록 힘의 균형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쪽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검찰은 과거에 팔이 안으로 굽는 수사 사례를 종종 보여주었다.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물론 이를 일반화해 검찰 전체가 불공정하다고 매도할 수 없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한 업적은 남다르다. 하지만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검찰과 삼성은 뛰는 운동장이 다를 뿐 정치와 경제 중심에 있는 집단이다. 사회와 국민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다. 그래서 공정한 과정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공정함은 결국 규칙을 지키는 일이다. 정해진 규칙을 지켜야 과정이 떳떳해진다. 결과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여론전이나 더 큰 권력은 곁가지일 뿐이다. 조선시대 감찰사인 암행어사는 마패와 함께 반드시 지닌 물건이 '유척'이었다.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를 말한다. 곤장 등의 형틀 크기가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지 잴 때 사용하는 도구다. 권위와 신뢰는 공정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끝까지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결과와 관계없이 검찰은 명분을, 삼성은 실익을 챙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취재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