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는 주체에 따라 정부규제(또는 법적 규제)와 자율규제로 구분된다. 정부규제와 자율규제는 목표가 동일하다. 규제 목표는 인간 존엄성 보호, 이용자 보호, 청소년 보호 등 사회 책임 이행(자율규제) 내지 공익 추구(정부규제)에 있다.
자율규제는 규제 상대방인 피규제자가 사회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자신들이 준수해야 할 기준을 스스로 설정하고 따르도록 한다. 이는 피규제자가 '규제 대상'이 아니라 '규제 주체'가 됨을 의미한다. 자율규제는 전통의 명령 통제형 정부규제보다 신속성, 유연성, 환경변화 적응성, 전문성 등에서 우월한 것으로 평가된다.
2000년대 인터넷 일상화로 미디어 환경이 바뀌자 자율규제는 정부규제의 실효성과 정당성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대체재 내지 보완재로서 주목받았다. 오늘날 국경이 무의미해진 글로벌 스마트 미디어 시대에서는 자율규제의 필요성과 의의는 더욱 강력해졌다. 특히 게임 산업에서 자율규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시대 요청이자 헌법 명제다.
첫째 게임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다. 기술 발전과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른 영역이다.
정부규제는 높은 경직성, 역외 적용 한계로 인해 산업 발전에 장애 요인이 될 위험성이 짙다. 오히려 국내 사업자에 대한 역차별 문제만 발생시킬 수 있다. 국가 주도의 '딱딱한 법(경성법)'이 아니라 게임 산업 관련 주체의 자발 참여에 기초한 '말랑말랑한 법(연성법)'으로 규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향후 게임 산업 발전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출현으로 현재 자율 규제에 포섭되지 못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자율 규제의 장점인 빠른 적응력과 신속한 문제 해결로 점차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게임 산업은 문화산업이기 때문이다. 문화산업을 지배하는 헌법 원리는 문화국가원리다. '문화국가'란 국가로부터 문화 활동 자유가 보장되고 국가에 의해 문화가 공급돼야 하는 국가, 즉 문화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호·지원·조정 등이 이뤄져야 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문화국가원리는 문화 개방성 내지 다원성 표지와 연결된다. 개별성, 고유성, 다양성으로 표현되는 문화의 사회 토대는 '자율성'에 있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입장이다. 이러한 문화국가원리에 따르면 문화산업으로서 게임 산업 영역에서는 자율 규제가 우선 적용돼야 하는 것이 헌법 명제에 충실한 것이다.
이와 같은 시대 요청이자 헌법 명제에 충실하기 위해 현재 게임에서는 확률형 아이템 확률정보 공개에 대해서 자율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가 이러한 게임 산업의 자율 규제에 대해 독자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자율 규제를 준수하지 않는 게임에 대해 일정한 사회 벌점을 부과한다. 게임 산업의 자율 규제를 독립된 제3 기구가 검증하는 현행의 자율 규제 시스템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매우 고도화된 시스템이다.
현재 확률형 아이템 자율 규제는 정부나 법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니라 이용자 요청을 사업자가 적극 받아들여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장에서 이용자의 적극 감시는 자율 규제 지속을 위해서도 중요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정부규제 전통과 문화가 워낙 강하다 보니 자율 규제에 대한 인식이 매우 일천하다. 이에 따라 스마트 미디어 시대에서는 정부규제와 자율규제를 상호 조화시키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정부규제와 자율규제를 상호 조화시키기 위한 기본 전제로서 자율 규제를 위한 토대 구축과 인식 제고, 산업계의 자율규제 역량 강화, 효과 높은 자율 규제 합리화 시스템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금지하는 업무 관행처럼 단순히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정부규제부터 하고 보자는 생각은 스마트 미디어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접근 방법이다. 자율규제는 결코 '자유방임'이 아니라 자율규제도 '규제'라는 점을 정부규제를 입안하는 당국이나 입법자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의장 sghwang@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