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시스템반도체 인력난

반도체 웨이퍼. <사진=SEMI 코리아>
반도체 웨이퍼. <사진=SEMI 코리아>

“인력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 국내 시스템반도체 설계업체 대표들은 인력 가뭄에 수년째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한 설계업체 대표는 국내에서 인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자 아예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등 해외 인력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국내 반도체 토양에서 오랜 기간 사업을 영위한 만큼 업계를 책임질 미래 인재를 길러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것이다. 미세한 회로를 칩 속에 구현하려면 관련 툴을 다룰 줄 아는 설계 전문 고급 인력이 필요하다. 트렌드에 맞는 세련된 상품을 기획해도 뛰어난 설계 인력이 없다면 결코 완성된 칩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전문 인력이 가파르게 줄고 있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230명에 불과하던 팹리스 설계 인력이 2017년에 322명으로 늘었지만 2018년 들어와 298명으로 다시 줄어드는 등 고용 시장이 상당히 불안하다. 또 전국 4년제 대학 학과 가운데 반도체 특화학과는 12개, 채용 조건형 계약학과는 딱 한 군데 뿐이다. 더욱이 그나마 배출된 인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 입사를 선호하면서 중소 설계업체에 공급되는 인력 규모는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국내 시스템반도체업계는 중국 업체 성장, 수요 악화 등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새 인력이 이 업계에 문을 두드리지 않는 주요한 배경도 실적 부진이 클 것이다. 인력이 늘어나야 가격 경쟁력과 신규 인력을 업고 매섭게 시장에 진입하는 중국과 붙어볼 만 하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시스템반도체업계는 오랜 기간 쌓아 온 '기술 노하우'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여년 동안 반도체 설계를 해 오면서 쌓은 '허리층' 인력의 기술 노하우가 신흥 반도체 강국과 차별화한 한국만의 잠재된 에너지라고 말한다. 앞으로 노하우를 국내 시스템반도체 미래를 책임질 인재에게 전수할 수 있도록 기반을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 지난해 정부의 시스템반도체 육성 전략 이후 다양한 인력 양성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 작업 외에도 타 전공자에게 시스템반도체 설계 지식을 알리거나 중소 팹리스 업체 존재감을 다양한 행사에서 알리는 등 곳곳에 숨은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방안을 모두가 강구해야 한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