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정책포럼]<103>우리 제조 본능을 다시 깨우자

…소부장 1년을 돌이켜보며

[ET정책포럼]<103>우리 제조 본능을 다시 깨우자

지난해 7월 초 느닷없이 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대 한국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조치가 실시됐다. 그 가운데 하나는 '에칭가스'라 불리는 고순도 불화수소였다. 국민에게 생소하던 이 화학 소재는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이나 포토레지스트와 더불어 반도체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고, 그런 만큼 국민은 우려와 함께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를 더욱더 분개하게 한 것은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이 정도에 그치지 않고 2차, 3차 수출 규제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 에칭가스보다 더 우리의 취약점을 노리는 품목을 수십, 수백개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어느 국책기관 자료에 따르면 수출 규제가 시작된 시점에 우리 반도체 핵심 3대 품목의 세계 특허 수준은 일본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포토레지스트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약 7분의 1 수준이고, 불화수소의 경우도 이만큼 격차가 있었다. 그런 만큼 큰 기술 격차를 이른 시일 안에 추격하기란 쉽지 않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흘러나왔다.

시간이 얼마간 흘러 올해 초 국내 모 화학소재 전문 기업이 12나인(nine), 즉 99.9999999999% 수준의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애초 예측과 달리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우리 반도체 기업은 물론 디스플레이 분야와 '소부장'을 국민 용어로 만든 소재·부품·장비업계에서도 생각한 것만큼의 악영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이 큰 역할을 했다. 정부는 소부장 기업이나 연구개발(R&D) 지원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른바 '소부장 특별법'이라고 불리는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을 시행했다. 이 법을 통해 지원책은 특별법에서 상시화로 전환됐고, 정책 대상 범위도 종래의 '소재·부품' 중심에서 '소재·부품·장비'로 더 분명하게 확대했다. 이것으로 지난해 일본 수출 규제 이후 발표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더욱더 장기 차원의 제도 기반에 올려놓은 셈이다.

느닷없는 일본의 기술무기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의 기술 역량 또는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은 어떤 것보다 값진 교훈이 됐다. 일본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품목에 따라서는 90%나 됐지만 그 사이 공급처 다변화와 국산화라는 대응은 분위기를 바꿔 놓았고, 누군가는 우리나라 기업의 제조 본능을 깨웠다고 평하기도 한다.

실상 불화수소의 경우 국산화는 물론 우리 기업이 대량 생산에도 성공했고 공급처도 다변화됐으며, 포토레지스트 경우 우리 기업이 공장 증설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거의 전량 일본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던 불화 폴리이미드 역시 우리 기업이 양산하기 시작했다.

소재·부품을 무기 삼은 일본 정부의 공격 1주년을 즈음하는 시점에서 이런 전화위복이란 단어를 공유할 수 있어 더없이 기쁘다. 그 사이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 같은 소식을 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례가 준 더없이 값진 교훈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중장기 기술 개발 및 국산화 지원의 중요성이다. 이번 공격이 느닷없이 시작됐지만 우리 나름대로 그동안 소재·부품 국산화와 기술 개발에 꾸준히 투자한 '축적의 시간'이 없었다면 이번 1주년을 맞은 이 시점의 결론은 달랐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우리 산업 경쟁력은 정부와 기업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이를 지속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산업 경쟁력의 한 축이 기업-정부 협력에 있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세 번째는 세계를 향한 우리 산업의 잠재력에 대한 메시지였다. 앞으로 이 비슷한 도전을 누군가 다시 해 올지 모르지만 이번처럼 쉬운 결정은 어려울 것이다. 이번 소부장 대응을 통해 세계가 여실히 확인한 것은 '제조 한국의 힘', 바로 이것 아닐까 한다.

박재민 건국대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