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에서 자국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규제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이 3개 핵심 품목 수출을 제한하면서 우리나라에 타격을 입히려 했지만, 한국 주도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자립화가 본격 추진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는데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시장을 이끄는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가 수급 불확실성이 높아진 일본 제품을 대체하기 위해 움직이면서 자국 기업 피해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서울 지국장을 지낸 사와다 가쓰미 마이니치신문 논설위원은 최근 게재한 칼럼에서 자국 정부의 수출규제가 '우책(愚策)'이라고 질타했다.
사와다 논설위원은 “일본 정부는 2019년 말까지 수출규제 3개 품목에 개별 허가를 냈지만, 한국은 낙관적 예측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일본 이외 국가에서 조달하고, 국산화를 추진하는 등 대책을 내놓았다”고 분석했다. 또 “일본 기업이 (한국 비즈니스에) 고전하고 있다”면서 “수출규제 대상 품목을 사용하는 한국 기업은 글로벌 대기업인만큼 이 같은 전개는 처음부터 예상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신문도 이달 사설을 내고 자국 정부에 수출규제를 재검토해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글로벌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무역 제한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상이 지난 5월 G20 통상장관회의에서 각국의 방역용품 수출규제 움직임에 대해 “무역 제한은 가능한 한 빨리 해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을 재조명했다.
도쿄신문은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웃나라인 한국과의 관계 강화가 급선무”라면서 “한·일 양국의 방역 협력은 거의 실현되지 않고, 사업가나 연구자들의 상호 방문도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같은 비정상적 상태를 이어가는 것이 좋을 리 없다”고 꼬집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달 한국 산업계의 탈일본 전략이 이어지면서 자국 기업이 실적 부진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정부 수출관리 강화에 따라 한국 기업들이 대체재 투입 가능한 공정을 파악하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면서 “한국 기업 조달 전력 전환으로 일본 소재업체 실적에 그늘이 지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일본 불화수소 전문업체 스텔라케미파의 2020년 3월 결산기(2019년 4월 1일~2020년 3월 31일) 순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18% 줄었다. 해당 기간 불화수소 출하량은 30%가량 감소한 것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는 “이번 수출규제 조치는 수율 저하를 막기 위해 다소 비싸더라도 고품질 소재를 사용했던 (한국 기업들의) 관습을 흔들었다”면서 “한일 정부 대립이 일본계 기업에 악영향을 초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