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을 논문이나 특허와 같이 국가 연구개발(R&D)의 주요 성과 지표로 설정하는 '국가연구개발사업 등의 성과평가 및 성과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연구성과법)이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개정돼 표준정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표준 분야 발전이 '연구성과법' 개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세부 문제를 각계 전문가가 모여 함께 해결해 나아가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표준정책은 산업정책의 하위 개념이지만 서로 밀고 당겨 주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1960년대 경제 발전 시기에 한국산업규격(표준)이 제정돼 우리 제품의 품질 향상과 수출 경쟁력 향상에 밑바탕이 됐다. 이를 토대로 모든 산업이 성장, 주력 분야는 이미 국제 경쟁력을 갖췄다. 선순환으로 작용해 우리나라 표준 경쟁력도 끌어올릴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ISO, IEC 등 표준화 국제기구에서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개정 '연구성과법'의 핵심 내용은 표준을 논문, 특허 등과 같이 R&D 성과로 인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 법이 시행되면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보유하거나 개발하고 있는 기술을 더욱 적극 국제표준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산업과 표준 둘 다 추구하는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의 전환 전략에 일조할 것이다.
표준을 연구 성과로 인정하는 초석이 마련됐다 하더라도 이것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해결돼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표준 개발 결과물이 적절히 관리·활용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문제다. 행정부처별 칸막이형 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이종 기술의 융·복합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통합관리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둘째 표준 R&D 예산 확충과 배분 문제다. 먼저 표준의 중요성에 부합하게 표준화 예산 절대액을 늘려야 한다. 현재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는 어느 표준 선진국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표준화 예산이 할당돼 있다. 다른 분야도 표준 선진국 수준으로 표준화 예산을 배정, 표준 강국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재정을 뒷받침해야 한다.
셋째 대학 등 학계에서도 표준화를 연구 성과로 인정하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표준을 창의 사고의 산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첨단산업 분야의 표준은 기술 아이디어를 상용 제품에 적용하기 위해 이해관계자 간 조정과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노력의 결실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투입되는 노력을 고려하면 표준을 연구 성과로 간주해도 무방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학계, 연구기관, 정부 간 공감대 형성이 선행돼야 한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에서 미국은 자국의 첨단기술 노하우 유출을 이유로 중국 기업이 자국 표준화 단체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거나 참여하더라도 새로운 표준 개발 과정에는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정책은 첨단기술 경쟁에서 표준 개발과 선점이 중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표준을 연구 성과로 인정하는 '연구성과법'은 표준 선진국에서도 사례가 드문 만큼 우리나라 표준 R&D 관련자의 염원이 실현된 중요한 입법이다. 산·학·연 관계자 모두는 21대 국회에서도 표준과 관련된 후속 입법 및 제도 조치가 원활히 이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웅래 국회의원(마포 갑/더불어민주당) csrimfr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