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출규제 1년...소부장 2.0 시대로<하>] '소부장 자립' 총력전 계속해야

보호무역 확산 속 고부가가치 주목
목표는 자급자족 아니라 세계 호령
비전략 물자 대일 의존도 여전히 높아
기술 초격차로 2·3차 수출규제 대비해야

[日 수출규제 1년...소부장 2.0 시대로<하>] '소부장 자립' 총력전 계속해야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019년 주요국 소부장 교역 현황일본 수출구제 관련 기업 대응 현황일본 수출규제 이후 한국 소부장 산업 경쟁력 변화

#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일본 수출규제 1년을 앞두고 우리나라가 위기를 정면 돌파하면서 전화위복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또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 강국'과 '첨단산업의 세계 공장'을 위해 범국가적 역량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글로벌밸류체인(GVC) 재편에 대비해 세계적 소부장 경쟁력을 갖춰 새로운 공급망에서의 주도권을 선점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지난 1년간 굳건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며 일본의 기습을 버텨냈다. 하지만 한국 소부장이 앞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한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산·학·연·관의 지속적 관심과 지원이 요구된다. 일본 수출규제 사태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소부장 자립'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韓 소부장 약점, '블랙스완'에 드러나

우리나라 소부장 산업은 2018년 기준 중국, 독일,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5위 규모로 성장했다. 체계적 정책 지원이 시작된 2001년 이후 수출은 5배, 무역수지 흑자는 51배 증가했다. 2001년부터 2018년까지 연구·개발(R&D) 및 관련 인프라 구축 사업에 약 5조4000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범용제품과 부품, 수출대기업 중심 산업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대외 환경변화에 취약한 구조를 형성하게 됐다. 범용제품은 중국, 인도, 베트남 등 신흥 제조국의 거센 추격을 허용했다. 부품에 집중한 나머지 소재와 장비 부문에서는 해외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산업 구조는 소부장 분야 기반을 받치는 강소기업을 육성하기에 부적합했다.

업계 관계자는 “빈약한 소부장 저변은 탄탄한 생태계를 구성하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4차산업혁명에 따라 중요해지는 첨단 소부장 자립이 지연되면 고부가가치 산업 구조 전환도 지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소부장 육성 정책이 국산화를 넘어 수출 시장으로 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각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무역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압도적 기술력을 갖춰야만 수출 장벽을 넘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자국우선주의에 나서면서 소부장 수출길이 좁아지고 있는 형국”이라면서 “정부와 기업들이 주요 수출품목을 고부가가치화하기 위한 대책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부장 경쟁력은 현재 일본의 90%수준이다. 작년 7월 일본의 소부장 경쟁력을 100으로 가정하면 당시 한국은 89.6에 불과했다. 이 달에는 91.6으로 상승했지만 일본에 미치지 못했다.

업종 별로 보면 반도체·디스플레이를 포함한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 및 통신장비 제조업 경쟁력이 지난해 7월 92.7에서 현재 98.7로 가장 가파르게 성장했다. 전경련은 수출 규제를 받은 3대 품목(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폴리이미드) 경쟁력 상승력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같은 기간 1차 금속 제조업 경쟁력은 88.1에서 92.5, 식료품 제조업은 91.9에서 96.3, 기타 기계·장비 제조업은 97.0에서 101, 화학물질·화학제품 제조업은 96.1에서 97.8로 올랐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日 추가 공격 대비해야

우리 정부는 지난달 수출 규제 철회 요구를 거부한 일본을 상대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를 재개했다. 이에 대해 가지야마 히로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극히 유감”이라면서 “WTO 제소 절차를 중지하고 대화 테이블로 돌아와야 한다”고 기존과 변함없는 입장을 보였다. 일본의 추가 수출규제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1일 '일본 수출규제 1년, 규제품목 수입동향과 대일 의존형 비민감 전략물자 점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일본 정부가 규정한 비민감 전략물자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 기초유분, 플라스틱 제품 등 기초 소재에 집중됐다. 해당 품목의 대일 수입 의존도는 80~90% 수준이다. 비민감 전략물자는 작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이후 수출심사를 강화한 품목이다. 연구원은 대일 의존도가 높을수록 수출규제에 취약해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비민감 전략물자 중 일본에서 100만달러 이상 수입하고 대일 수입 의존도가 70% 이상인 품목 100개를 HS코드를 기준으로 선별한 결과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나 기초소재류 품목 등 상위 3개 품목군에 56.7%가 집중됐다. 기초유분의 일본 의존도는 94.8%에 달했다. 반도체 제조용 장비(86.8%), 플라스틱제품(83.3%), 사진영화용 재료(89.7%) 등도 높았다.

보고서는 “지난 1년 간 직접적으로 일본의 수출규제를 받은 품목이 모두 비민감 전략물자”라면서 “추가 수출규제를 단행한다면 비민감 전략물자를 대상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편 지난 1년 동안 수출규제 3개 품목 통관 수입실적을 분석한 결과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는 대일 수입 의존도는 각각 6%포인트(P), 33%P 감소했다. 벨기에와 대만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한 덕이다. 불화폴리이미드는 수출규제 전후 대일 의존도 9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수출규제 이전부터 국산화가 상당 진행돼 직접적 수입 차질은 제한적이었다.

홍지상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우리 기업과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규제 품목 국산화와 공급망 다변화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일본이 노렸던 국내 수급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다”면서 “일본 정부가 한국의 WTO 제소와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 등에 반발해 추가 규제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보이는 만큼 공급망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