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노사정 대타협 무산 “대단히 아쉽다”...“디지털 시대, 대립적 노사 관계 벗어나야”

과거 산업화 시대 대립 탈피 강조
경사노위 '잠정합의안 완성' 당부도
국무회의 ILO 핵심비준 3건 의결
경영계 “정부 일방적 진행” 반발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추진된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대단히 아쉽다'고 밝혔다. 디지털 시대 대전환에 따른 노동 형태 변화에 발맞춰 과거 산업화 시대의 대립적 노사 관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춰 노사 관계도 발전해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미 프리랜서와 특수고용근로자, 플랫폼 노동자 등 비전통적 노동과 일자리가 급격히 확대되고 우리 사회 전반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게 문 대통령 판단이다. 전국민 고용보험 추진도 이러한 시대변화를 반영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노사정 협의 과정에서 모두가 공감하고 동의한 부분”이라며 '대단히 아쉽다'고 표현했다.

앞서 정부와 노동계, 경영계는 지난 1일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외환위기 이후 22년만에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등 사회적 대타협을 시도했으나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반발하는 조합원들에게 사실상 감금되면서 회의 직전 전격 취소됐다.

문 대통령은 “변화하는 환경에 걸맞게 이제는 과거 산업화 시대의 대립적 노사 관계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며 “노동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노력과 함께 서로 상생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노사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위기 시기에 상생과 협력의 문화는 더욱 절실하다. 서로 양보하며 대타협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는 길이며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고 당부했다.

잠정 합의에 그쳤지만 노사정대표자간 합의에 의미도 부여했다. 코로나19 위기 속 노사정이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극복하자는 뜻이 담겼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와 기업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과 함께 노사의 고통 분담, 상생 협력 의지가 실려 있다”고 전했다.

이어 “보건의료 종사자의 처우 개선과 확충 등 국가 방역 체계와 공공의료 인프라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의 추진도 포함돼 있다”며 “이와 같은 합의정신은 적극적으로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잠정 합의된 내용을 경사노위에서 이어받아 사회적 합의로 완성시켜 주기를 바란다며 “민주노총도 협력의 끈을 놓지 말아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도 이번 잠정 합의 정신을 최대한 이행해 살려가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최대 90%의 고용유지 지원금 지원 기간을 3개월 더 연장해 5000억원을 증액하는 등 3차 추경에도 이미 반영했다”며 “앞으로 정부는 잠정 합의 내용대로 고용 유지와 기업의 생존을 위한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며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도 연말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애소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절차를 다시 시작했다.

고용노동부는 △제29호 강제 또는 의무노동에 관한 협약 비준안 △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비준안 △제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 비준안 등 3건의 ILO 핵심협약 비준안이 심의 의결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이들 법안 비준을 요청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ILO 핵심협약은 기본적 노동권의 보장과 관련한 국제규범이다. 190개 협약 중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 강제노동 관련 협약(29호, 105호), 아동노동금지 관련 협약(138호, 182호), 균등대우 관련 협약(100호, 111호) 등 8개가 해당된다. 우리나라는 이 가운데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 관련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이들 법안 개정안을 두고 경영계는 물론 노동계에서도 이견이 많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무회의 의결 후 “경영계가 ILO 핵심협약 비준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정부가 비준동의안 추진을 서두르는 것은 향후 경영계와의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하려는 의도”라면서 반발했다.

국무회의에서는 29호 협약 등 3개 협약 비준안이 상정됐다. 정부는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과 병역법 개정도 동시에 추진 중이다.

105호 협약은 '정치적 견해 표명' 및 '파업 참가' 등에 대한 처벌로서 강제노동을 부과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형벌체계는 실정법을 위반한 정치적 견해 표명과 쟁의행위 참가 등에 대해 징역형 규정을 두는 경우가 있어 형벌 체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해 이번에 포함하지 않았다. 또 분단국가 상황 등을 고려한 국가보안법 등과도 배치된다.

우리 정부는 1996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 당시부터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으나 24년째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 관련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못하고 있다.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K 방역으로 높아진 우리나라 국격을 고려할 때 ILO 핵심협약 비준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자 선진국이 이행해야 할 당위적 의무”라며 “비준 동의안'과 '법률 개정안'이 연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