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박사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대통령 코드 <14>넬슨 만델라 (하)흑과 백, 영원한 이데올로기

박선경 박사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대통령 코드 <14>넬슨 만델라 (하)흑과 백, 영원한 이데올로기

수십 년간 박해 받았던 흑인들은 대통령 만델라에게 복수를 요구했다. 악몽은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잔인한 고문과 차별, 억울한 투옥생활을 보상받아야 했다. 실종된 자녀, 살해된 남편의 뼛조각 하나라도 찾고 싶었다. 인종차별정책에 희생된 숫자는 350만명이 넘었다. 만델라는 탄식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깊고 오랜 상처를 남겼다. 우리는 그 상처를 치유하는데 여러 해, 여러 세대를 보내야 할 것이다.”

핍박받았던 국민은 가해자 처벌을 요구했다. 만델라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립했다. 적폐청산이 아닌 화해와 용서를 제안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인권침해위원회, 사면위원회, 보상위원회 등 3개 위원회로 구성됐다. 명예회복과 배상으로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고 진실을 고백하는 가해자에겐 용서받을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잔혹했던 과거는 산자의 기억이 아니라 역사로 기록되어야 했다. “진실은 아픔이지만 침묵은 죽음이다(The Truth Hurts But Silence Kills).”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치료는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인종차별주의자인 전임 대통령 피터 윌렘 보타는 침묵했다. 청문회 출석을 거부했다. 보타의 뻔뻔함에 격분한 국민이 시위를 벌였다. 아파르트헤이트를 추진했던 관료들을 처벌하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데 클레르크 전 대통령도 “잔학 행위는 경찰관들의 과잉 충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부는 지시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피했다.

여론이 들끓었다. “가해자를 사면해서도 용서해서도 안 된다. 우리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만델라는 국민을 설득했다. “피해자에게 보상으로, 가해자는 용서함으로 갈등과 분열을 끝내야 한다. 복수로 상처가 치유될 수는 없다.” 사면 반대 여론 속에 참회 릴레이가 이어졌다. 언론인 127명은 “흑인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정부 측 주장만 전달하라는 보도 지침 그대로 방송했다. 인종차별에 침묵한 것에 대해 사죄한다”고 진실을 털어놓았다. 진실을 말한 백인들은 사면됐다.

만델라 국정 첫 번째 목표는 '민족화합'이었다. 그는 백인만을 위한 나라, 흑인만을 위한 나라에 반대했다. 흑백이 화해함으로써 진정한 민족화합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흑인 대통령의 보복을 우려했던 백인들은 안도했다. 흑인들은 불만을 품었다. 흑인 대통령 탄생으로 흑인들 삶에 변화가 올 줄 알았다. 차별법이 폐지되고 '진실과 화해'로 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됐지만 빈곤으로부터 화해할 진실은 묘연했다.

만델라 전 부인 위니 만델라는 만델라를 26년간 옥바라지 한 동반자이자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에 앞장선 동지였다. 그녀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서 강성 투사로 활동했다. 위니는 만델라가 인권의 성자로 추앙받는 것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만델라가 쟁취한 권력은 백인들에게 경제 주도권을 넘기고 받은 부당거래라고 주장했다. 화해 아닌 백인과 정치적 합의를 했을 뿐이라며.

2018년 2월, 남아공 정부가 보상 없이 국가의 토지 수용이 가능하도록 한 헌법 개정안이 가결되었다. 토지개혁 명분인 이 법안은 흑인 우대, 백인 역차별 인종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제2의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논쟁이다.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흑인들의 분노와 보복에 남아공 백인 인권이 속수무책이다. 수백년 지배층이었던 10% 백인들의 업보란다. 부패한 정치인들은 흑인에게 증오와 복수를 부추기며 만델라 영혼까지 끌어들인다. 만델라는 알았을까. 흑과 백은 영원한 이데올로기며 보복의 끝은 공멸(共滅)이란 것을.

박선경 박사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대통령 코드 <14>넬슨 만델라 (하)흑과 백, 영원한 이데올로기

박선경 남서울대 겸임교수 ssonno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