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지 데이터를 이용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세상은 데이터를 중심으로 산업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비대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분석에 용이한 데이터 정형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헬스케어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반으로 질병에 효과가 있는 약을 추천해 주는 플랫폼이 등장하는가 하면 X레이나 자기공명영상(MRI) 등 의료 영상 데이터를 분석해 영상의학과 의사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하는 시스템도 개발됐다. 나아가 지금은 특정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데이터를 심층 분석,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해 질병 치료가 가능하도록 하는 디지털 치료제까지 등장하고 있다.
거대한 흐름 속에 제약 산업도 빅데이터를 통한 비즈니스 확장에 빠르게 적응하는 등 변화하고 있다. 대체로 하나의 신약이 개발돼 세상에 출시되기까지 10여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잠자고 있던 신약이 세상에 출시된다고 하더라도 시장 반응은 생각 외로 냉담할 수 있다. 새롭게 개발된 신약을 사용하다가 예상하지 않은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결국 생명에 위험이 없는 것으로 과학 검증된 의약품만이 세상에 살아남게 된다.
제약사 입장에서 개발된 의약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파악하는 것은 제약 비즈니스 승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된다. 개발된 의약품에 대한 부적응증을 찾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특정 의약품을 처치해선 안 되는 집단군을 찾아냄으로써 해당 약품의 안전성을 보장하면서 시장에서의 퇴출을 막을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발된 약품이 어떤 환자에게 어떻게 투약되고 있는지, 해당 약품의 성분과 조성별 치료 효율 등을 조사하는 것 등은 시판 후에 제약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어떤 약품을 어떻게 유통할지, 영업에 집중할 부분이 어디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분석을 통해 한 의약품이 시장에서 계속 살아남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결정되게 된다. 또 경쟁사 의약품과 비교해 해당 의약품의 장단점을 간접 비교할 필요도 있다. 동시 처방되는 약물의 조합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만일 어떤 두 약이 동시 처방되는 경우가 많다면 두 약을 복합제로 만들어 시장에 출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쟁사의 놀라운 제품 개발로 인해 해당 약품의 매출이 변동할 수도 있다. 제약 비즈니스는 이처럼 시판 전 전임상 및 임상을 거친 신약을 개발해 이뤄지기도 하지만 세상에 출시된 이후 시장 반응과 사용 패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게 된다. 데이터를 분석해서 현명한 통찰력을 발휘하는 자가 제약 산업의 최종 승자가 될 것이다.
제약 빅데이터 산업 분야에 이른 시기부터 눈을 뜬 거대 기업이 있다. 이미 해외에 막강한 제약 빅데이터 인프라를 갖추고 해당 분야 네트워크 지배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해외 헬스케어 빅데이터 분석 업체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제약 산업의 빅데이터 패권이 해외 기업에 의해 잠식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내 제약 산업도 빅데이터 인프라를 통해 비즈니스 혁신을 모색하고 있지만 규모의 경제에서 해외 기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신약 개발뿐만 아니라 이미 출시된 약물에 대한 제약 비즈니스 분석 시장에도 정부의 적극 지원을 통해 경쟁력 있는 국내 기업을 육성·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한현욱 차의과학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stepano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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