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와 영국 방송통신규제위원회(Ofcom·오프콤)는 정책을 수립할 때 의견을 담는 과정을 나름 투명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소비자와 사업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수렴된 의견을 보고서에 적시하면서 정책 반영 여부와 그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오프콤이 이머징테크놀로지와 이로 인한 미디어 산업에서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견을 소비자·사업자·학계에 구하는 '콜 포 인풋'을 공식 요청했다.
'의견을 구하노라!' 의견 수렴에는 진입장벽을 낮춰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거나 가격을 낮추고 접근을 쉽게 해서 소비자 가치를 극대화할 가능성 있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눈여겨볼 것은 네트워크와 서비스를 승인하고 규제하는 틀의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 있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는 사실이다. 규제하는 모든 영역에서 혁신과 기술 발전이 상상을 초월할 속도로 변하고, 그로 인해 다양한 차원에서 소비자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규제 기관으로서 테크놀로지 변화에 대한 준비를 하겠다는 의도로 읽히는 대목이다.
기술 변화, 산업 동향과 규제 영역에서의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오프콤에 부여된 의무 가운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또 혁신을 이해하고 촉진함으로써 시장에서 미래 변화가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에게 혜택이 되도록 도울 방법을 구하는 것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 산업에서 테크놀로지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인식 아래 이해관계자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청취, 미리 규제 변화의 틀과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디어 산업의 본질에 대해 또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미디어 산업의 본질 가운데 하나는 '테크놀로지 드리븐 인더스트리'라고 생각한다. 디지털과 인터넷이 미디어 산업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더 테크놀로지와 트렌드에 대한 이해 및 지식 없이 미디어 산업 변화 자체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오프콤이 테크놀로지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것을 보며 미디어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책과 규제의 틀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미국에서도 테크놀로지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3개월 가까이 시범서비스를 제공한 컴캐스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피콕'이 지난달 15일 서비스를 정식 개시했다.
이른바 '스트리밍 전쟁'에서 승리를 어떻게 거둘 것인가는 사용자에게 쉽게 콘텐츠를 찾는 사용자경험(UX) 제공 여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시범서비스에서 대표 콘텐츠 중심으로 20개 채널을 구성, 새로운 형식의 채널 서핑으로 콘텐츠를 쉽게 찾을 수 있게 했다.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면서 사용자 의견을 구한 것이다.
피콕은 성공 여부가 콘텐츠만큼 중요하게 시청자가 콘텐츠를 찾고 스스로 제어하는 경험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믿는다. 앱 기능과 UX가 스트리밍 전쟁에서 가치를 제공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UX와 사용자환경(UI)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테크놀로지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테크놀로지 기반으로 UI 및 UX를 통해 사용자로 하여금 콘텐츠 바다에서 쉽게 원하는 콘텐츠를 찾게 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콘텐츠를 추천하기도 한다. 피콕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등 거대 OTT등이 테크놀로지에도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서양 양안의 정책 기관과 거대 미디어사업자를 통해 다시 한 번 미디어 산업에서 테크놀로지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사용자와의 끊임없는 의견 수렴 중요성이 부각됐다. 국내 미디어 산업이 놓쳐서는 안 될 지향점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