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 칼바람이 대한민국을 휩쓸던 1997년에 직원 월급이 부족해서 대표가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야 하던 회사가 있다. 서버실에 물이 새어 들어와서 비가 내리면 대걸레를 들고 문 앞을 지켜야 하던 이 회사는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사가 됐다.
변변한 사무실 하나 없어 일요일마다 모임 공간을 사무실 대용으로 쓰던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한국 소셜 게임 역사를 쓰며 업계의 신화가 됐다.
엔씨소프트와 선데이토즈 이야기다. 이들 성공 사례는 게임 가능성을 보여 줬다. 청년은 꿈을 꾸고 업계로 뛰어들었다. 단칸방에서 시작한 회사가 빌딩 사서 이사 갔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릴 정도로 게임업계는 기회의 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중소 규모 개발사는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대기업 게임과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발전한 중국 게임 사이에서 고전하고 있다. 소비자 눈이 높아짐에 따라 개발 비용도 올라갔다. 연예인 마케팅이 당연해지면서 홍보 비용도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자본이 성공의 필요조건이 되자 개발사 간 격차는 더욱 커졌다. 기회의 땅이던 게임업계는 대기업 위주로 재편됐다. 사다리는 시나브로 사라졌다. 제2의 김택진을 꿈꾸는 사람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게임업계는 독특하다. 대기업이 시장을 선도하지 않는다. 변화를 끌어내는 곳은 흔히 인디 개발사라 불리는 중소기업이다.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유행을 만들면 대기업이 그 흐름에 올라타 거대한 파도로 만든다.
자본과 규모가 점점 중요해지는 상황에서도 인디 개발사를 바라보는 이유다. 인디 개발사는 게임업계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확산하는 생태계의 한 축이다. 이 때문에 국내외 많은 대기업이 인디 게임에 투자 의지를 보인다. 우리 정부도 최근 인디 게임 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강구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지원 사업은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 사업은 해외 전시 출품이나 마케팅, 현지화 등 게임 외 영역이 많지만 이보다는 각종 서류 작업 지원이나 개발비 확보를 위한 투자사와의 연결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인디게임협회도 “인디 개발자도 마케팅이나 사업 모델은 기업 못지않게 체계를 갖춰 접근하고 준비한다. 정부도 기존에 하던 지원 사업을 답습하지 않고 변화한 개발자들의 트렌드를 반영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게임을 예술로 분류, 1인 개발자나 인디 개발사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소한 생계를 보장, 창작 활동을 지원하자는 주장이다.
현재 기준에 따르면 게임 내 음악이나 원화를 제작한 사람은 예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음악과 원화가 합쳐진 게임은 예술로 분류되지 않는다. 낡은 기준에 연연하기 때문이다.
연예계는 배우는 물론 기술 스태프까지도 예술인으로 인정받는다. 게임도 음악, 영상, 시나리오, 그림에 기술까지 더해진 종합 문화 콘텐츠다. 예술인으로 인정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게임업계는 그 어떤 분야보다 변화가 빠르다. 정부가 이 분야를 눈여겨보고 발전시키려 한다면 낡은 기준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보다 더 유연한 마음가짐으로 접근해야 한다.
김강욱 게임칼럼니스트 wizard290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