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자기조립연구단(단장 김기문 포스텍 화학과 교수)은 소리가 물리현상뿐 아니라 화학반응까지 조절할 수 있음을 규명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10일 밝혔다. 복잡다단하게 조립·변화하는 생명활동에서 소리가 미치는 영향과 이해를 도울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단은 스피커 위에 페트리 접시를 올려놓고 소리가 접시 안 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찰했다. 소리가 만들어낸 미세한 상하 진동은 접시 안에 동심원 모양의 물결을 만들었다. 동심원 사이 간격은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좁아졌고 그릇 형태에 따라 다른 패턴을 나타냈다. 소리 주파수와 그릇 형태로 물결 패턴을 조절할 수 있음도 확인했다.
지시약을 이용해 소리가 만들어낸 물결이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도 분석했다.
파란색에서 산소와 반응하면 무색으로 바뀌는 염료(바이올로젠 라디칼)를 접시에 담고 스피커 위에 얹은 후 소리를 재생했다.
그 결과 물결에서 움직이지 않는 마디 부분은 파란색을 유지했고, 반면 주기적인 상하 운동을 하는 마루와 골(가장 높은 부분과 낮은 부분)은 산소와 반응해 무색으로 변했다. 공기와 접촉이 활발해 산소가 더 많이 용해됐기 때문이다.
산성도(pH)에 따라 색이 변하는 지시약 BTB 용액을 이용해 동일 실험을 진행한 결과, 소리에 따라 용액은 파란색, 녹색, 노란색으로 구획이 나뉘었다. 물결로 인해 기체 용해도가 부분적으로 달라지고 산성, 중성, 염기성이 공존하는 용액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실렸다.
김기문 단장은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소리로 쥐의 움직임을 통제했듯 이번 연구는 소리를 이용해 분자의 거동을 조절한 것”이라며 “화학반응과 유체역학을 접목해 발견한 새로운 현상으로 소리를 이용한 다양한 화학반응 조절 등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양승민기자 sm104y@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