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스템반도체 중소기업 대표들은 착잡한 심정이다. 전문연구요원으로 채용돼 1년 6개월 동안 실무 교육을 통해 양성된 직원들이 국내 반도체 대기업 신입 공채에 지원한다는 소문 때문이다.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설계 경험이 많이 필요한 특성상 석사 학위 졸업생도 최소 1~2년은 실무 교육을 받아야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인재로 길러진다. 시스템반도체 개발 또한 3~5년 이상이 소요되는 긴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부족한 자금으로 교육과 업무를 병행하는 등 수년간 인재를 기르며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이 신입 채용 형태로 이들 인재를 채용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어떤 시스템반도체 중소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전문연구요원의 대기업 전직제도 폐지 방침이 지난해 확정됐지만 1년이 다 되도록 시행되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11월 21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병역 대체복무제도 개선안'을 확정했다. 개선안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 중소·중견기업 배정 인원을 1200명으로 늘리고, 복무 기간에 대기업으로 전직하지 못하도록 해서 중소·중견기업이 연구인력을 안정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중소·중견기업 연구 인력이 대기업으로 유출되는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대기업은 여전히 전직 가능한 병역지정 업체로 열려 있다. 또 대기업은 신규 배정은 받지 못하지만 전직이 가능, 사실상 중소기업의 특례 신규 배정을 뺏어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대기업을 신규 인원 배정에서 제외한 정부의 중소·중견기업 육성 정책을 무색하게 하고, 중소·중견기업의 경쟁력을 한순간에 잃게 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시스템반도체 1등을 위한 인재 확보에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상생을 통해 생태계 구축에도 힘쓰겠다는 소식에 반가워해야 할 국내 시스템반도체 중소기업은 이 같은 소식을 접하면 두려움부터 든다. 부족한 시스템반도체 인력을 대기업이 어디서 구하겠는가. 대기업의 많은 연봉과 인센티브를 꿈꾸는 시스템반도체 중소기업 직원들의 엑소더스가 걱정된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기업의 인력 부족은 300명에 육박한다. 이에 비해 한 해 동안 반도체 설계 분야의 석·박사 졸업생은 불과 2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또 졸업생 대부분이 반도체 대기업에 취업하다 보니 시스템반도체 중소기업은 늘 인력난에 허덕인다. 이들 중소기업은 그나마 병역특례 인원을 배정받아 우수 인재를 확보하고 교육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블랙홀 같은 대기업의 인력 채용으로 인재를 빼앗긴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부터 실무 교육비에 해당하는 이적료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글로벌 파운드리 1위 업체인 대만 TSMC의 성장 비결은 30여년 동안 쌓아 온 수많은 시스템반도체 중소기업과의 협력 생태계다. 대한민국 소부장 상생 전략에도 시스템반도체 인재 육성과 관련한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소부장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문연구요원의 대기업 전직제도 폐지를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또 대기업은 진정한 상생을 위해 중소기업의 귀중한 인재와 특례 인원을 무상으로 빼내 가는 것을 멈춰야 한다. 이와 함께 시스템반도체 인재 육성 근본 방안을 다 함께 논의할 협의체 구성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서규 픽셀플러스 대표·한국시스템반도체모임 회장 lsk@pixelpl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