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코리아의 잠정 자진시정안이 발표되면서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서의 불공정거래 사건에 대한 동의의결제도 활용이 올해 첫 발을 뗐다. 을의 피해 구제, 소비자 후생 확대를 위한 시정안 사후관리가 필수적이다.
동의의결제도는 불공정거래 혐의가 있는 사업자가 스스로 원상회복, 소비자 피해구제 등 시정 방안을 제안해 타당성이 인정되면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24일 애플코리아는 1000억원대 상생방안과 행위별 잠정 자진시정안을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의해 의견수렴 절차에 들어갔다.
애플코리아는 지난 2009년 아이폰3GS를 한국에 출시한 뒤 이통사에 TV·옥외 등 광고비와 매장 내 전시·진열비 등을 떠넘긴 혐의를 받았다.
공정위는 2016년 애플 조사에 착수하고 2018년 “공정거래법(독점 규제와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있다”는 심사 보고서(공소장)를 보냈다.
같은 해 12월과 2019년 1·3월 등 총 세 차례 전원회의 심의를 거쳤고, 애플은 동의의결을 신청한 이후 1차(2019년 9월 25일)·2차(5월 13일)·3차(6월 17일) 심의 끝에 동의의결이 개시됐다.
일각에서 “과징금, 고발 등 '응보주의'보다 동의의결제도는 '면죄부' 논란이 크다”고 지적하지만, 당국은 동의의결제 활용 의지를 지속 밝혔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5월 본지와 인터뷰에서 “갑을 관계에 있어 동의의결은 을의 피해를 직접 구제하는 데 있어 과징금 부과 등의 시정조치보다는 효과적이기도 하다”며 “ICT 분야에서 위원회 심의와 법원 판결을 모두 거치는 것은 자칫 '사후약방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기업과 소비자의 피해를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 동의의결의 장점이다. 제재로 부과된 과징금은 국고로 귀속돼 피해자를 직접 구제하지 못해서다.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손해배상 요구액을 전부 인정받기 어려울뿐더러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것도 한계점이다.
일례로 공정위는 2009년 퀄컴의 2·3G 칩에 대한 충성리베이트 제공행위에 대해 2732억원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은 10년이 지나서야(작년 3월) 사실상 공정위 승소로 나왔다. 칩 시장은 이미 4G를 거쳐 5G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다만, 동의의결 장점을 살리고 면죄부 논란에서 벗어나려면 '사후관리'가 필수적이다. 기업이 자진시정안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점검·감시하기 위함이다.
이날 공정위는 “애플이 최종 의견서를 받을 경우 다음 반기부터 3년 동안 매반기 종료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이행감시인에게 이행점검을 받아야 한다”며 “이행감시인으로부터 이행점검결과를 통지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 이행점검결과보고서를 공정위에 제출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이행감시인은 회계법인으로, 공정위가 선정한다. 당국은 보고내용에 대해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애플은 시정 요구에 따른 이행결과를 재차 보고해야한다.
기존에는 해당 사건을 맡은 공정위 직원이 사후관리를 담당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다수의 사건처리 부담으로 업무에 한계가 있었다.
한편, 공정거래법·표시광고법에 한정된 동의의결제 적용을 대리점·가맹·하도급 분야로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공정위는 지난달 대리점 분야에 동의의결을 도입하는 법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유재희기자 ryu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