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조금이라도 즐겨본 사람이라면 트롤링이란 말이 익숙하다. 트롤링은 북유럽 신화 속에 사람을 괴롭히던 몬스터 '트롤'에서 유래했다. 함께 즐기는 팀 게임에서 일부러 게임을 망치는 행동이다. 혼연일체가 돼 협력해도 이길까 말까한 게임에서 자기 역할을 하지 않거나 다른 팀원을 방해하는 행동으로 팀에게 패배를 안긴다. 같은 팀원을 화나게 만들기도 한다. 대부분 네트워크 게임이 트롤을 제재하는 장치를 두고 있음에도 트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존재감'이라는 심리학 개념은 트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존재감은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며,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졌는지에 대한 주관적 지각'으로 정의한다. 주관적으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얼마나 중요하게 판단하는지에 따라 달린 것이다.
트롤은 스스로 존재감을 뽐내는 방법으로 팀 패배를 선택한다. 팀이 지게 만드는 역할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을 실현한다. 비난을 받지만 스스로 미친 존재감이라고 인식하기에 만족한다.
트롤링이 게임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게임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도 트롤링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 사례는 게임 셧다운제다. 2011년부터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청소년 보호와 인터넷 과몰입 예방을 목적으로 자정에서 새벽 6시까지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게 한 제도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럼 이 제도는 정책목표를 달성해 안전한 사회와 행복한 청소년들을 만들었는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게임 셧다운제가 청소년보호에 효과적이라면 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단 한 곳도 셧다운제를 시행하지 않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유해매체로부터 보호되는 결과가 행복이라면 한국 청소년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OECD 국가 중 어린이와 청소년 삶 만족도는 꼴찌 수준이다. 게임도 국가에서 통제하는 사회 속 청소년이 행복하다면 그건 망상이다. 동물원 철창으로 안전하게 보호된 동물이 야생 동물보다 행복하리라는 생각과 다를 바 없다.
셧다운제는 부모에게도 악영향을 미쳤다. 아이는 경험과 시행착오 끝에 환경에 대한 주도성을 키워간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았다고 부모 자질과 능력이 생기지 않는다. 냉정하게 돌아보자. 10년이 다 돼가는 셧다운제 시행 기간 동안 부모는 급변하는 기술환경에서 어떻게 아이를 기르고 미래를 계획할 것인지에 대한 능력이 향상됐는지 말이다.
긍정적인 사례가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셧다운제가 게임만 막은 것이 아니라 부모 양육역량도 함께 막고 있었던 것이다. 증거는 여전히 10년 전 아니 20년 전과 똑같은 말들로 확인된다. “아이들이 망가지고 있어요. 나라는 무엇을 합니까? 철저하게 막아주세요.” 셧다운제가 지속하는 한 이 말은 앞으로 10년 아니 20년 후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청소년은 수동적 보호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을 만들어가는 주체다. 그들이 만들어 갈 미래에 기성세대 운명도 함께 달렸다.
가능성을 차단하며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트롤링은 이제 멈춰야 한다. 대신 청소년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경청하고 지원하는 선한 존재감을 세워야 할 때다. 중고생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내가 셧다운제 폐지를 바라는 간절한 이유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심리학박사) zzazan01@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