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공정조달, 중앙과 지방 협력 모색할 때

[기고]공정조달, 중앙과 지방 협력 모색할 때

가끔 가족, 친구 또는 누군가를 대신해 구매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부탁한 사람의 요구사항을 그대로 따라야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물며 국민의 세금을 집행하는 경우라면 어떨까? 공공조달 실행 과정이 규정과 원칙에 따라야 하는, 그래서 때론 답답하게 느껴질 때와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공공조달은 어떠한 원칙을 따라야 하는가. 공정성, 투명성 그리고 경제성이라는 가치가 최우선으로 충족돼야 한다. 공정성이란 차별 없는 기회의 제공, 투명성은 특정인의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지 않도록 거래 절차가 모두에게 공개돼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경제성은 민간시장과 같은 가격 경쟁력보다 적정가격, 공공성 관점에서 '최적의 가치'를 달성하는 방향이다. 중소·여성·장애인·사회적 기업 등 사회적 약자기업을 배려하는 정책도 공공조달의 몫이다. 공공조달이 민간처럼 시장효율성만 따질 수 없는 이유다.

일반 국민은 최신 휴대폰이 출시되면 더 저렴한 가격으로 사기 위해 공동구매에 참여하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판매점을 찾아가 구매하기도 한다. 공공조달에서도 공동구매와 마찬가지로 조달청이 공공기관에서 많이 쓰는 물품을 미리 판매자들과 가격이나 AS 조건 등을 협상해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 등록해 놓고 공공기관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중앙조달방식이 있다. 공공기관이 각자 기업과 개별적으로 입찰·계약 절차를 통해 구매하는 분산조달방식도 있다. 우리나라는 나라장터 쇼핑몰에 등록해 놓은 제품을 구매하고, 등록제품이 없을 경우 개별적으로 구매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대부분의 선진국도 전자상거래 추세에 따라 공공조달 전문기관에서 제공하는 쇼핑몰 서비스를 이용하는 중앙조달방식을 따르고 있다. 반복적인 입찰·계약에 따른 번거로운 절차와 많은 시간 소요, 행정비용 낭비, 조달업체 불편 해소 측면을 배려한 결과다.

한때 영국은 중앙조달 역할을 축소했지만 중앙조달 기능을 다시 확대하는 추세다. 중국도 완전한 분산조달에서 벗어나 중앙조달체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지방분권화에 대한 지역의 요구가 커지면서 공공조달 역시 지방자치 영역으로 분리하자는 분산조달 요구가 있다.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이 시중가보다 높은데 의무적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다 보니 예산이 낭비된다는 논리다. 지방자치단체가 독자 쇼핑몰을 만들어서 운영하겠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이유로 분산조달을 주장하는 입장도 이해는 된다. 쇼핑몰 가격이 시중가보다 비싼 지 여부는 확인해 볼 여지가 있어 일단 논외로 친다면, 지방자치단체마다 공공쇼핑몰을 만들면 중복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쇼핑몰 구축 비용, 상품 계약을 위한 공무원 증원, 조달부패 방지 장치 마련 등 유무형의 중복 비용은 새로운 예산낭비가 될 수 있다. 그 비용은 조달의 파트너인 업체에 새로운 거래부담을 발생시킬 수 있다.

결국 효율적이면서 공정한 조달을 이루는 방향은 국민에게 '최적의 구매가치'를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고민에서 찾아야 하겠다. 경제성뿐 아니라 공정성, 투명성 모두를 고려해 중앙조달과 분산조달의 장단점을 심도 있게 따져보고 소통해나가면 지금의 불편과 부족함은 혁신적 공공조달로 전환될 것으로 확신한다.

김병건 한국조달연구원 연구위원 kimbgun@ki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