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재확산과 장기화 사태가 우리 사회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저성장과 고령화, 빈부격차, 정치적 세대갈등 등 우리 사회의 아픈 점이 가감 없이 표출되며 사회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한 국가를 지탱하고 희망을 안겨주는 힘은 교육에서 비롯되지만 우리 교육현장은 오히려 코로나19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공교육에서 갑작스럽게 시행한 온라인 비대면 수업은 디지털 학습격차를 초래했고,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전환에 얼마나 준비가 안 돼 있는지가 드러났다. 또 학력 저하에 불안한 학부모가 학원 등 사교육 시장을 찾으면서 '부모 재력이 자녀 학력'이라는 속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무엇보다 100일도 채 남지 않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앞두고 불안감을 안고 등교하는 고3 수험생들이 가장 안타깝다. 중고등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이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자신을 개발할지 알려주고 스스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을 형성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중고등 교육은 어느 대학 무슨 학과에 합격하느냐가 핵심이 됐다. 그렇다 보니 중장기 교육제도와 학습환경의 개선, 사회에 필요한 인재 양성 계획 등을 세워야 할 교육부는 '입시제도'와 관련된 이슈에만 골몰하게 되었고 그간 입시제도만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수시모집 확대는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으며 입시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를 훼손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꾸준히 성실했던 학생'과 '늦게 철든 학생'을 균형 있게 선발하기 위한 좋은 취지로 도입됐으나 수시모집에 비중 있게 활용되는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 등이 입시컨설팅업과 사교육 시장을 키우고 가정환경이 입시에 많은 영향을 미치도록 했기 때문이다. 학생부에 기재될 인턴십, 봉사활동 등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선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 인맥이 필요하기에 수시전형의 주류인 학생부종합전형은 '금수저 전형'이란 비판까지 나온다. 40년 가까이 대학에 몸담고 학생의 입학과 졸업을 함께 한 사람으로서 현재의 대학입시제도는 수능 비중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수능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동등한 자격시험으로서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수능을 준비하는 가정과 학교 여건의 영향력을 무시할 순 없으나 일반적으로는 합리적이고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잣대다. 다만 수능의 방식은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수능은 60만여명의 수험생들이 동일한 문제로 시험을 보기 때문에 변별력이 저하되고 있다.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어려우면 '불수능', 쉬우면 '물수능'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물수능은 한 문제 차이로 교과목 등급이 바뀌는 웃지 못할 상황도 발생한다. 변별력이 없으므로 대학도 학생선발에 수능 비중을 높이기 어렵다. 또 학생이 창의적이고 깊은 생각을 해야 하는 공부보다 문제를 틀리지 않는 연습을 하게 됨에 따라 학력 저하는 점점 심각해진다. 대학에서 신입생의 기초학력 부족에 대한 문제제기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생이 단순 암기와 문제풀이 위주 수능 공부에 익숙한 탓에 한 학기 동안 고교 수준의 내용을 다시 가르쳐야 하는 경우도 많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문제풀이와 실수 안하는 훈련은 학생의 창의력과 독창성을 말살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벨상 수상자는 물론 미래를 이끌어갈 세계적 리더를 기를 수 없다. 창의적인 교육과 연구는 대학에서도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고등학생들이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창의성이 말살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수능이 입시의 핵심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도록 난이도에 따라 유형을 수능 1과 2로 나누고, 학생이 지원하는 대학에 따라 선택해 응시하도록 하는 것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대학과 학생들이 학업능력에 따라 수능유형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을 확대하면 공교육 정상화와 수월성 교육을 모두 잃지 않을 수 있으며 입시제도와 관련된 소모적인 논쟁과 사회갈등도 해소할 수 있다. 교육부가 해야 할 본연의 과업은 국가에 필요한 인재 양성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출생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이 0.977명까지 떨어졌다. 초저출산으로 인해 학생 수가 감소하면 대학 역량도 약화될 것이고 이는 결국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지금 집중해야 할 문제는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의 사회변화를 예측하고 학생에게 필요한 역량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찾는 것이다. 또 과학기술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교육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유관부처와 서로 협력하여 인재 양성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교육 당국과 현장 교사와 교수들은 문제를 틀리지 않는 학생을 선발하는 방법을 고민하기보다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내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mk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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