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업계가 세계 2위 석유회사인 영국 BP의 '탄소배출 제로' 선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다른 글로벌 메이저 석유사들의 연쇄 참여를 촉발했기 때문이다. 정유업계로서는 석유 시장에서 일고 있는 탄소배출 저감 등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를 수밖에 없어 대응책 마련이 과제로 떠올랐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BP는 향후 10년 동안 일일 석유가스 생산량을 약 100만 배럴 감축키로 했다. 이는 현행 일일 생산량 대비 40%에 맞먹는다.
BP는 순탄소 배출 제로(0) 회사로 거듭난다는 목표다. 2030년까지 매년 약 50억 달러를 신재생 및 바이오 에너지 등에 투자키로 했다. 매년 약 5억 달러인 기존 투자비 대비 10배를 쏟아 붓는다. 이 회사는 업스트림(원유 탐사 및 생산) 미진출 국가에서 신규 탐사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상 청정에너지 회사로 업을 바꾸는 셈이다.
BP의 이 같은 움직임은 오랜 기간 석유·가스 생산에 주력해 온 전통 석유업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BP처럼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에 동참할지, 아니면 그대로 남을지에 대한 견해가 나뉜다.
에너지 전환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유럽계인 쉘과 토탈 등이다. 쉘은 저탄소 추진 사업 계획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국계인 엑슨모빌과 코노코필립스, 쉐브론 등은 소극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기존 석유업을 고집하는 업체들도 탄소 배출 저감 노력에는 이견이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메이저 석유업체들이 에너지 전환에 집중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포트폴리오 내에서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정유업계는 메이저 석유업체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스트림부터 내려온 '저탄소 배출'이 시류로 자리 잡은 만큼, 편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정유 4사는 석유화학 투자를 늘리고 있어 재생에너지로 급선회하면서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에 따라 각사는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1위 SK이노베이션은 이차전지 배터리를 주력을 한 '그린밸런스 2030'에 집중한다. 2030년까지 환경 부정 영향을 제로로, 나아가 플러스로 만들어 회사를 성장시키는 목표다.
GS칼텍스는 여수공장 생산시설 가동 연료를 저유황 중유(LSFO)보다 이산화탄소를 19% 이상 적게 배출하는 액화천연가스(LNG)로 전량 대체했다.
이와 함께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도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정유업계가 신재생에너지 등에 투자하지 않는 이상 메이저 석유사들의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저탄소 배출 등 추진 속도를 따라가긴 힘들다”면서 “따라서 각사마다 전기차 충전소 등을 확충한다든지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처리하는 등 여러 저탄소 배출 방안을 고민 중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
국내 정유사, 재생에너지 급선회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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