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전공은 전기공학이었고, 박사학위는 물리학 분야 연구 끝에 얻었다. 오랜 기간 주력한 분야는 반도체인데, 이 와중에 자동차 부품과 같이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연구도 했다. 종횡무진이다. 스스로도 “전문 분야가 헷갈릴 정도”라고 한다.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는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연구자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공부했고, 다방면에 많은 이력을 쌓았다.
이름을 알린 것은 반도체 분야 연구였다. 1994년부터 3년간 삼성전자에 재직하면서 디램 패키징, 배선 설계 분야에서 활약했다. KAIST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반도체 연구를 지속해 굵직한 성과들을 내놓았다. 대표로 들 수 있는 것이 '3차원 반도체 적층구조(TSV)'다. TSV는 반도체를 수직으로 쌓아 배선 길이를 줄이고 설계를 최적화하는 방법론이다. 반도체를 개발하는 글로벌 기업이 채용한 방식이다. 김 교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도 세계 톱 수준 석학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 펠로 선정 영예도 안았다.
김 교수는 “반도체는 날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해 특히 열정을 쏟은 기억이 난다”면서 “제자들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실험하면서 보낸 날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회고했다.
반도체 외에도 성과가 많다. 사실 반은 재미로 시작한 것에서 성과가 다수 나왔다. 삼성전자 컴퓨터의 전자파 차단 기술 연구를 도왔고, 현대자동차 제너시스의 자동차 배터리 위치와 배선 설계에 참여한 일도 있다. 한때는 드론과 스마트기기 무선충전 연구에도 빠져들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기회만 된다면 앞으로 생명공학, 의과학, 면역학, 분자생물학 공부도 하고 싶다고 한다.
이런 종횡무진 연구의 원동력은 호기심이었다. 학창시절 누군가 보는 책에 관심이 가면 꼭 사서 읽고야 말았다.
그는 “어느 한 분야만 보지 않았고,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이 병 수준이었다”면서 “전공 필수 외에는 모두 다른 과 수업을 들었고, 다른 학문에 대한 고민에 빠져 전공 수업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고 웃어보였다.
김 교수는 이런 특이한 성향과 다방면의 연구 배경 및 성과 탓에 교내 싱크탱크인 글로벌전략연구소(GSI) 수장을 맡고 있다. 넓은 지식이 연구 기획과 전략 마련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는 교내 판단이었다.
GSI는 올해 세계 석학과 전문가를 초청, 세 차례 포럼을 통해 사회 각 분야 코로나19 관련 비전을 제시해 온 곳이다. 제프 마지온칼다 코세라 최고경영자(CEO), 토마스 프레이 미국 다빈치 연구소장 등 유명인사들이 참여할 정도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올해 두 차례 포럼을 더 앞두고 있다.
김 교수는 GSI를 통해 세계 수준의 과학기술 기반 발전전략을 도출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가 K-방역으로 세계 주목을 받는 가운데, KAIST가 어젠다를 선점해 주목을 받고 있다”면서 “향후 코로나 관련 의료의 차별 없는 전파, 건강한 100세 시대 구현, 네트워크와 실감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교육 등을 실현하기 위한 연구개발(R&D) 방향을 도출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인공지능(AI) 기술력 확보다. 김 교수는 AI가 이런 GSI의 목표를 달성하고, 향후 KAIST 학교 전체가 발전할 핵심 기반은 AI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 김 교수는 10년 전부터 AI에 심취해 있다. 그가 해온 모든 연구가 AI로 연결된다. TSV와 HBM에서 비롯된 컴퓨팅파워 발전 연구, 각종 전력 수급 관련 연구는 AI 발전을 견인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AI 분야에서 많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AI를 활용한 반도체 설계다. 김 교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앞서 AI를 이용한 반도체 설계 자동화 기술을 선점하는 것이 꿈”이라면서 “국산 메모리뿐만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성능을 높이고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원동력을 얻겠다”고 밝혔다.
또 하나는 교육자로서 석·박사 제자 100명을 배출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80여명이 학위를 딸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 가운데 약 30명은 구글, 엔비디아, 테슬라, 아마존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첨단 기업에서 핵심 연구자로 일하고 있다.
김 교수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제자들을 더욱 많이 키우고 싶다”면서 “제자들이 매년 실리콘밸리에서 가족 동반 동문회를 열고 있는데, 늘그막에 수십명 제자들을 실리콘밸리 엘카미노 거리 '소공동 순두부' 식당에 모아 함께 기술 얘기를 하며 소주 잔을 기울이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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