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안의 야크’는 도심을 떠나 자연의 운치와 경치를 즐기고 싶은 ‘힐링 라이프’의 로망을 품고 있다. 높은 고도를 자랑하는 부탄의 ‘루나나’에서 친환경 생활을 즐기는 여정은 그 자체로 ‘힐링’이다. 높은 행복지수를 자부하는 나라 부탄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부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국내 정식 개봉을 하는 건 20년 만으로 부탄 고유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귀한 기회이기도 하다. 다수의 관전 포인트를 자랑하는 웰메이드 영화 ‘교실 안의 야크’와 함께 행복을 찾는 여행을 시작해보았다.
영화는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는 구조로 진행된다. 배경인 부탄은 남부 아시아의 중국과 인도 사이 히말라야산맥 동쪽에 위치해있다. 부탄에서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신임교사 '유겐'은 호주로의 이민을 꿈꾼다. 교사라는 직업에 꿈도 열정도 없는 그에게 교육부는 4800미터의 고도와 56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루나나’로 전근을 명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태양열에너지에 의존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외딴 벽지학교에 발이 묶이게 된 것이다.
초반엔 철부지 선생 유겐이 부탄의 수도 팀푸를 떠나 가사, 코이나, 루나나에 다다르기까지 과정이 세세하게 나타난다. 한 편의 로드무비와 같은 전개는 직접 부탄으로 떠난 듯한 인상을 주어 ‘여행’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준다.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있는 경이로운 풍경은 덤이다. 실제로 부탄의 헌법에는 ‘국토의 총면적 60%는 산림으로 유지한다.’는 조항이 존재한다. 루나나의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루나나의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라는 말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간다. 유겐은 시종일관 친절한 그들에게 사실은 이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까지 꺼내며 매사에 불평불만이 가득하다. 기계와 도시 생활이 없는 불편함 속에 적응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루나나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인생관을 깨우치면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점점 교사라는 직업에 책임감을 느끼고 얼굴에 미소가 만연한 유겐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도 잊고 있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루나나 사람들은 선생님이 '미래를 어루만지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서로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유겐은 이곳에서 존중과 감사를 받으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미첸'은 유겐의 타지 생활을 도와주고, '펨잠'과 아이들은 그를 선생으로 존경하며 따른다. '살돈'은 유겐에게 야크의 노래를 가르쳐주며 그의 행복을 찾는 여정에 동참하기도 한다. 루나나 사람들에게 야크(솟과의 포유류)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며 하늘의 선물이다. 야크와 목동의 인연은 신성하고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이다. 서로의 인연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루나나 사람들과 유겐은 어느새 끈끈한 유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영화는 영화 속에서만 ‘친환경’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다. 실제로 감독과 배우들은 힘든 여정을 함께 버티며 촬영을 감행했다. 가사에서 내린 뒤 마지막 도로에서 8일간을 걸어야 도달할 수 있는 곳,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학교에서 로케이션 촬영되었다. 전기도 없고 이동통신도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제작은 오직 태양 에너지에 의존해야 했다. 출연진들도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다. 마을 너머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주민들이 주요 배역에 발탁되어 작품을 꾸렸다. 영화와 현실이 맞물리는 지점을 확인해볼 수 있어 더욱 몰입감을 높여준다.
소음 가득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친환경'의 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사운드의 최소화와 잔잔함은 감동을 높여주었다. 바스락거리는 자연의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는 은은하게 귓가에 퍼진다. 이따금씩 나오는 노랫소리는 더욱 크게 울려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현장에서 노래를 듣는 것만 같은 생생함이 전해져왔다.
'교실 안의 야크'는 특이하게 그 나라의 문화와 지형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루나나까지 가는 과정은 물론이고 생활 방식과 그들의 노래, 가치관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모두가 들어봤지만 동시에 잘 모르고 있는 나라 ‘부탄’을 좀 더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듯하다. 자극적인 요소 없이 109분 동안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힘은 부탄 영화 산업의 미래를 보여준다. 영화 한 편으로 아마 다큐멘터리의 역할까지 수행하지 않을까.
꾸밈없는 촬영은 배우들의 표정을 자세히 보여주는 연출을 시도한다. 출연진들의 익숙한 비주얼은 낯섦과 친근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언어는 다르지만 우리와 어딘가 닮아있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문화적으로 이어져있는 ‘아시아인’이라는 것을 되새기도록 해준다. 연기 경력이 없는 배우들의 선천적인 재능은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유겐' 역의 셰랍 도르지, '미첸' 역의 유겐 노르부 렌덥, '살돈' 역의 켈덴 라모 구룽, '펨잠' 역의 펨잠 등 주연 배우들 대부분이 이번 영화가 데뷔작이다.
펨잠은 실제로 루나나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며 영화나 카메라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언젠가 처음으로 차를 타보는 것이 꿈이라는 펨잠의 소망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유겐 역의 셰랍 도르지 또한 맡은 역할과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학교를 중퇴하고 뮤지션의 경력을 쌓고 있는 그는 영화에 출연하기 이전에 호주로 이주하는 것을 고민 중이었다고 한다. 순수한 마음을 지향하는 그들의 정신을 진실한 연기에서도 느낄 수 있다.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 부탄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고 호주로 가길 원한 주인공. 결국 루나나에 가서 행복은 마음속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주인공은 흔히 여행을 떠나고 무언가를 깨닫기 마련이다. 그 과정이 색다른 건 아니지만 우리에게 행복을 찾아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화려한 촬영 기법이나 신선한 스토리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질 영화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행복을 찾는 여행, 힐링 영화 '교실 안의 야크'는 추석 연휴의 시작인 9월 30일부터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장세민 전자신문인터넷 K-컬처팀 객원기자 (k-cultur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