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규제 예측 확률

[기자수첩]규제 예측 확률

“기술이 정부 정책을 앞서간 사례죠.” 약 1개월 동안 안면인식 체온측정 카메라 논란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 업계 관계자가 답답함을 호소하며 던진 말이다. 안면인식 체온측정 카메라를 의료기기로 규제할지 여부로 설왕설래가 오갔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열화상카메라의 의료기기 여부에 대해 “검역 목적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열 감지 스크리닝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에는 의료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재차 확인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해당 제품을 의료기기로 오인할 만한 과대광고, 예를 들면 '정확한 체온을 측정합니다' 같은 문구로 홍보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뒷맛은 개운치 않다. 다중이용시설에 출입하는 많은 사람이 과연 체온측정 카메라가 얼마나 정확한 체온을 측정할까 하는 의문을 품는다. 가이드라인이 나온 이후에도 여전히 오픈마켓에는 '체온을 정확하게 측정한다' 식의 홍보 문구를 넣은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최근에는 안면인식 체온측정 카메라에 QR코드 인식 기능과 생체인식을 결합한 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정확한 체온을 수치 형태로 표시하지 않고는 출입 명부를 대체하기 쉽지 않다.

제품 성능과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융합제품'에 맞는 새로운 규제 기준이 나와야 한다. 체온 측정의 정확성, 안면인식 성능, 보안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이 때문에 규제 기관이 이를 모두 담당하기는 쉽지 않다. 자칫 '이중규제'가 생길 우려도 있다.

전통 산업은 사전 규제를 통한 예측 확률이 높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융합 제품이 늘수록 예측 확률은 점점 낮아진다. 용어부터 제품의 개념 정의, 성능 기준까지 세부 기준이 없다 보니 시장이 혼란에 빠지기 일쑤다. 제품이 이미 시장에 깔린 후 규제가 생기면 이번처럼 급작스런 판매중지나 수출 중단이라는 날벼락을 맞기도 한다.

세계 표준을 따라가기만 하던 과거와 달리 국내업체는 창의력을 발휘해 세계 트렌드를 앞서서 견인하는 제품도 속속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규제 기관은 한 걸음 더 앞서 가야 한다. 규제와 산업 활성화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형평성 및 합리성이라는 잣대로 방향성을 제시하는 등 예측 확률을 높여야 한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