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배달서비스 홍수시대다. 서울시가 주도하는 '제로배달 유니온'이 지난달 출범했다. 1차로 맛있는소리·띵동 등 7개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2차로 다음 달 9개 앱이 서비스를 시작한다. 경기도도 이달부터 '배달특급' 브랜드로 서비스에 나선다. 화성, 오산, 파주 세 곳을 시범 지역으로 선정했다. 전북 군산 '배달의명수', 충북 '먹깨비', 인천시 '배달서구' 등은 이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어림잡아도 서비스를 시작했거나 준비하는 지방자치단체만 30여개에 이른다. 4월 총선 때 수수료 개편에 불만이 쏟아졌고, 정치 이슈로 넘어가면서 대표 지역사업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지자체의 '배달앱 짝사랑'은 여러 이유가 있다. 취지는 좋다. 배달의민족과 같은 배달공룡의 횡포를 막고 독과점으로 흐르는 배달앱 시장의 폐해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소상공인은 물론 소비자 권익을 지켜 주겠다는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다. 무엇보다 수수료를 확 낮췄다. 0~2%대 수준이다. 기존 배달앱의 6~12%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다. 지역화폐와 맞물려 지역 상권까지 활성화할 수 있다. 지역 인심도 얻고 명분도 세우는 일석이조 정책이다.
그럼에도 뒷말이 많다. 당장 눈앞의 정책 편익만 보기 때문이다. 배달앱은 겉으로 보기에 땅 짚고 헤엄치기 사업이다.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고, 특허나 기술이 필요 없다. 사업 모델도 단순하다. 운영업체를 선정하고, 앱을 만들고, 가맹점을 확보하면 '준비 끝'이다. 적자는 세금으로 메꾸면 그만이다. 문제는 주문 건수다. 가맹점인 소상공인도 주문이 없으면 외면한다. 결국 소비자를 움직여야 한다. 소비자는 냉정하다. 싸다고 해서 결코 지갑을 열지 않는다. 이미 배달앱은 사용자 2000만명을 넘을 정도로 일상에서 다반사가 됐다. 자연스럽게 서비스 평가 기준이 만들어졌다. 배송 속도, 서비스 품질, 불만 응대, 결제 방식 등 여러 면에서 경험치가 생겼다. 오히려 가격은 충분 조건일 뿐이다.
서비스는 경험에서 나온다. 축적 노하우가 있어야 욕구를 정확하게 읽는다. 배민의 배달서비스 시작 시점이 2010년이다. 10년 동안 쌓은 운영 경험을 싼 수수료만으로 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시장은 정점을 찍었다. 더 커져도 제한적이다. 8월 기준으로 배민 1066만명, 요기요 531만명, 쿠팡이츠 74만명, 배달통 27만명 등 상위 업체만 계산해도 1600여만명이 이용하고 있다. 뺏고 뺏는 '제로섬 게임'이 불가피하다. 시장이 성숙될수록 경쟁 요소는 서비스다. 물론 파격적인 가격으로 시장 뒤집기도 가능하다. 세금 폭탄을 퍼부어서 가격을 일시 낮출 수 있겠지만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공공 배달앱은 반짝 떴다가 흐지부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다. 용두사미로 끝날 공산이 높다.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시장 역동성이다. '공공의 힘'이 커질수록 기업을 포함한 민간 영역은 초라해진다. '시장의 힘'이 작아지면 경제 효용,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구멍이 생긴다. 시장경쟁체제는 독과점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효율 측면에서는 아직 따라올 상대가 없다. 정부는 공익성은 강하지만 경제성은 젬병이다. 배달앱도 민간이 만든 혁신 사업이었다. 효율을 앞세운 혁신 서비스에 공익을 이유로 덜컥 숟가락을 얹는다면 생태계는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공공의 역할은 따로 있다. 선수가 아닌 심판이다. 경쟁은 선수에게 맡기고 정부는 공정하게 뛸 수 있는 기준과 원칙에 집중해야 한다. 판을 뒤흔들 도전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 선수 실력이 없다고 심판이 뛸 수는 없는 법이다. 시장이 혼탁할수록 심판과 선수 역할은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게임이 흥미진진해지고 관중이 즐거워 한다. 시장이 살아나고 혜택은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취재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