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는 수출입이 국가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외개방형 경제로서 수출과 수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원자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거나 완제품을 수입해 재수출하는 가공·중개무역도 발달해있다. 심지어 네덜란드는 농업 역시 '가공·중개무역' 형태로 전개하는 국가다.
네덜란드가 농업 강국으로 칭송 받게 된 이유도 '농민'이 아니라 '상인' 덕분이었다. 네덜란드 국토 면적은 남한의 40% 수준으로 경상남·북도를 합친 규모에 불과하다. 이처럼 작은 나라가 미국과 함께 세계 양대 농산물 수출국이 된 것이다. 그런데 네덜란드 농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국가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네덜란드 농업은 중개무역을 통해 이뤄진다. 농산물을 직접 재배해서 수출하기보다는 여타 국가로부터 농산물을 수입해서 이를 다시 분류, 가공해 적절한 국가에 수출하는 식이다.
대표 사례는 카카오다. 네덜란드는 코트디부아르에 이어 세계 2위 카카오 가공 수출국가다. 하지만 정작 네덜란드에선 카카오가 단 1톤(t)도 생산되지 않는다.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2019년 네덜란드 통계청(CBS) 자료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가공하지 않은 카카오를 총 11억㎏ 수입해 전 세계에서 카카오콩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가 됐다. 금액으로 따지면 2조7000억원 정도다. 이렇게 수입된 카카오 중 4분의 1은 별도 가공 없이 곧바로 제3국에 다시 판매된다. 나머지 4분의 3은 파우더와 버터 등으로 가공해 다시 수출된다.
이 같은 중개무역 형태의 농업 역시 '상인'의 아이디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카카오콩을 발견한 17세기 네덜란드 상인은 자신들이 직접 재배하기보다는 식민지에서 생산한 뒤 유럽의 다른 국가로 수출하는 것이 더 나은 방식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때부터 네덜란드는 카카오 무역에 뛰어들었고, 오늘날 전 세계 카카오 원두의 30%를 수입하는 최대 수입국이 됐다.
물론 전 세계를 다니며 교역품목을 찾고 있는 네덜란드 상인의 눈에 카카오만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네덜란드 수출 농산물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담배의 경우 수출량은 89만t인데 비해 잎담배 수입량은 120만t이나 된다. 담배 수출 실적은 전적으로 수입 잎담배를 가공한 것이다. 커피 부분에서도 네덜란드는 세계 5위의 수입국에 해당한다. 튤립 등 네덜란드 농업을 상징하는 원예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네덜란드는 자체 재배하는 장미보다 더 많은 양의 장미를 유럽 여타 국가에 수출한다. 이 역시 수출하는 장미의 상당수를 수입해서 다시 수출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농산물 수출 지역도 갈수록 다변화되는 추세다. 원래 네덜란드 농업 수출 부분은 대부분은 유럽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인접국가인 독일이 전체 수출액의 25%, 벨기에가 11%,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9%와 8%를 차지하는 등 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한 수출이 76%에 달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 등 아시아 지역 수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네덜란드 농업의 성장 기회는 더더욱 커지고 있다. 네덜란드는 그간 자신들이 한정된 영토에서 생산한 물건만을 해외에서 판매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생산된 물건을 해당 물건이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농업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수요가 커지면 그에 부합하는 형태로 공급 역시 탄력적으로 늘릴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상인의 나라 네덜란드인은 농업을 하는 방식도 '농민'이 아니라 '상인'이 수행해 왔던 것이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aijen@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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