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자외선(EUV) 시대 개막에 따라 칩 메이커를 지원하는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 간 기술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기존 주력 분야를 사수하기 위해 기술 업그레이드에 힘을 쏟거나, 경쟁사가 확보한 압도적인 점유율에 균열을 주기 위한 신기술을 구현하는 움직임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일본 반도체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TEL)과 미국 램리서치 사이에 점화된 EUV 포토레지스트(PR) 트랙 장비 신기술 경쟁이다.
트랙 장비는 회로 제조를 위한 동그란 웨이퍼 위에 감광액인 PR을 고르게 도포하고, 노광 작업 이후 열을 가하고(디벨롭), 세정하는 기기다.
EUV 트랙 장비 시장에서 90% 이상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는 회사는 TEL이다. 이들은 기존에 구현했던 액체 PR 도포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며 경쟁력을 확보하는 모습이다.
한 예로 최근 TEL은 세계적 광 공학회 'SPIE'의 포럼에서 EUV PR 성능과 패터닝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공정 기술을 소개했다.
통상 EUV PR은 회로를 반듯하고 균일하게 만들기 위해 웨이퍼 위에 최대한 두껍게 도포한다. 문제는 PR 두께가 두꺼울수록 결함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마치 건축 기술 없이 초고층 빌딩을 쌓으면 쉽게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다. 적절한 대책 없이 PR 두께만 높이면 공정 중 패턴 이곳저곳이 붕괴되는 현상이 생긴다.
TEL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공정 솔루션을 연구 개발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노광 작업 이후 웨이퍼를 세척하는 '린스' 재료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안이다. 물보다 표면 장력이 작은 새로운 재료(FIRM)를 써서 공정 후 회로 모양이 손상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또 세척 이후 웨이퍼에 묻은 물기를 최대한 걷어내 패턴 붕괴를 막는 기술을 트랙 장비에 구현한다.
새로운 형태의 액체 PR를 도입하기 위한 시스템도 활발히 연구 중이다. TEL은 인프리아, 도쿄오카공업(TOK) 등 PR 제조업체와 협력 개발한 '무기물(MOR)' PR용 트랙 설비로, 기존 유기물(CAR) PR을 사용할 때보다 최대 이물질을 87%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트랙 장비 분야에서 TEL 자리를 넘보며 신기술을 개발 중인 회사는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 램리서치다.
램리서치는 반도체 회로를 깎는 식각(에칭) 장비를 주력으로 하는 회사다. 그러나 EUV 시대에 대응한 새로운 PR 코팅 장비 기술인 '드라이 레지스트'로 TEL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액체 PR을 도포하는 방식과 달리, 화학 반응으로 웨이퍼 위에 박막을 쌓는 증착(CVD) 기술을 응용해 EUV PR을 씌우는 혁신적인 콘셉트다.
회사는 기존 방식에 비해 훨씬 더 정밀하고 단단한 PR을 형성할 수 있어 EUV 광원으로 회로 모양을 그릴 때 해상력과 감도를 높이고, 배선의 거칠기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램리서치의 설명이다. 또 액체 PR을 사용할 때 낭비되는 PR의 양을 아끼면서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램리서치 장비는 생산성 향상, 박막 증착에 필요한 전구체 등 화학 물질 개발 등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면 TEL이 장악하고 있던 트랙 장비 시장에 적잖은 균열을 줄 만한 기술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TEL과 램리서치 사례처럼 EUV 공정 시대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기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적인 장비 업체 간 점유율 쟁탈전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TSMC 등 칩 메이커 간 EUV 초미세 공정 경쟁이 치열해지듯, 장비 업계에서도 특정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을 압도하던 회사를 꺾기 위한 참신한 기술과 제품이 잇달아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