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주요 대형병원은 핀란드 전체 인구 규모에 맞먹는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다수 공공기관에서 대량의 공공 보건의료 데이터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자의무기록(EMR)과 영상정보관리시스템(PACS) 보급률을 기록하며 데이터 품질도 뛰어나다.
활용 실적은 저조했다. 데이터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아 의료기관 간 연계가 어려운데다 엄격한 개인정보 규제로 활용이 위축됐다. 대부분 보건의료 데이터가 개인정보를 포함해 민감한 개인 사생활 침해에 대한 시민사회 우려도 컸다.
올해 초 개인의료정보를 가명 처리해 활용할 수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의료 데이터 활용 길이 열렸다. 정부도 올해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 공개와 EMR 인증제 시행, 보건의료 데이터 중심 병원 선정 등 굵직한 사업을 진행하며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조직개편에서 보건산업정책국 내에 보건의료데이터진흥과를 신설해 의료 데이터 활용과 표준화를 도모한다.
지난달 27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에는 가명 처리 방법과 절차가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산업 목적 연구를 위한 활용 가능성도 명시됐다. 신약·의료기기·소프트웨어 연구개발에 가명 처리된 보건의료 데이터의 활용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러 기관이 보유한 가명정보를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결합전문기관도 지정한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산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보건의료 분야 결합전문기관 지정 신청을 받아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보건의료 분야 데이터 결합전문기관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건산업진흥원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보건의료 분야 결합전문기관 지정이 진행 중으로 10월 말이나 11월 초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일정기간 운영해본 후 운영 성과와 수요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확대 추진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보건의료 데이터 중심 병원'이 공식 출범하면서 민간병원 중심 빅데이터 기반 연구 생태계가 마련됐다. '보건의료 데이터 중심 병원' 지원사업은 민간병원의 방대한 임상 데이터를 활용해 치료기술 개선, 신약 개발 등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부산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연세세브란스병원을 주관병원으로 하는 5개 컨소시엄에 20개 병원과 38개 기관이 참여한다.
의료기관 간 상호 데이터 연계를 표준화하는 작업도 진행된다. 각 병원에서 사용하는 EMR 시스템의 표준화를 유도해 진료 연속성을 보장하고 표준데이터 활용을 도모하는 'EMR 인증제'가 6월 1일부터 시행됐다. 또 보건복지부는 국제표준 의료용어인 '스노메드 씨티'(SNOMED CT) 국가단위 라이선스를 구매해 의료계에 보급하고 있다. 개별 의료기관이 별도 구매 사용하던 스노메드 씨티를 8월 1일부터 국내 모든 의료기관이 추가비용 없이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세계 80여개국이 활용하는 국제 표준으로 의료정보 표준화와 의료정보 교류 측면에서 진전이 있을 것으로 의료계도 기대하고 있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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