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과거 인터넷 강국으로 거듭나면서 급성장해 현재에 이른 경험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AI) 강국으로 거듭나는 것으로 또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기관과 우리나라를 새롭게 거듭나게 할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과거 '국가정보화' 기조를 수행, 수많은 정보통신기술(ICT) 성과를 냈고 현재 위치에 도달했다. 그러나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지난해 12월 인공지능(AI)에 방점을 찍은 'AI 국가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 원장의 생각도 같다. 오히려 정부 정책 이전부터 이를 준비해 왔다. ETRI는 김 원장 주도 아래 지난해 7월 '국가지능화 종합연구기관'을 표방하고 나섰다. AI로 온 국토와 사회, 국민을 연결하고 국가를 지능화하겠다는 포부다. 이를 통해 보다 안전하게 국민 삶의 질을 높이면서, 새로운 성장동력까지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올 여름에는 이들을 구체화한 'ETRI AI 실행전략'과 향후 15년 장기 계획인 '기술발전지도 2035'를 내놓기도 했다. 사업관리체계를 일신, 연구활동에 공정성과 효율성을 더하는 작업도 개시했다. 관련해서 하고자 하는 일이 많다.
이 때문에 김 원장과 ETRI가 제시한 새로운 길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면서 여전히 안팎의 관심이 높다. 김 원장을 만나 다양한 견해와 전망을 들어봤다.
-AI, 지능화에 방점을 찍은 이유는 무엇인지.
▲AI는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됐다. 인류가 관여하는 수 많은 영역에서 AI 기반 성과가 도출되고 있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인류역사상 최대 혁명 기술, 국가혁신성장 핵심동력으로 부를만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수준은 그렇게 높지 못하다. 정보통신기술(ICT) 하드웨어(HW) 제조분야에서 우수한 역량을 발휘한 반면에 AI를 비롯한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는 다소 뒤떨어지는 모습이다.
AI 역량을 키우는 것이 미래를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을 완성하는데 핵심 '키' 역할을 한다. 지능화 혁명이 곧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많은 부분을 바꿀 것이다. 국가지능화는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 사회, 산업, 공공 등 모든 영역의 지능화를 의미한다. 개인의 지능화를 통해 누구나 쉽게 지능정보를 활용하며 창의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할 기회를 마련한다. 사회의 지능화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회적 지원이 강화되고, 사회 지속가능성도 향상시킨다.
또 산업경쟁력 향상과 경제도 더욱 성장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공공 지능화를 통해서는 국가 차원은 물론 인류의 행복을 저해하는 미래 문제나 걱정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
-국가지능화 실현을 위해 ETRI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ETRI는 그동안 국가적 요구에 따라 산업화, 정보화에 필요한 서비스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메모리반도체와 이동통신시스템 등 정보통신기술(ICT) 구현에 국가대표 역할을 했다.
당연히 앞으로 지능화 관련 연구에서도 ETRI 역할이 크고, 중요하다. ETRI가 지능화 혁명을 견인하고, 4차 산업혁명을 완성하는데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능화를 통해 국가와 전 산업에 AI를 녹아들게 하고, 산업혁신 성장을 이뤄 'AI 강국 코리아'를 건설코자 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AI 실행전략'과 'ETRI 중장기 기술발전지도 2035' 등에 담았다. 이들이 시대와 국민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관을 탈바꿈하는 실행방안들이다.
-AI 실행전략에 담은 구체적인 목표를 말해달라.
▲AI 실행전략의 경우 3대 전략방향과 7대 실행전략을 구체화한 결과다. 3대 전략방향의 첫 번째 목표는 AI 서비스 기술 한계를 극복하는 혁신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혁신 대상은 단순히 AI 자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이세돌 9단과 대결한 알파고는 AI 통합 솔루션이었다. AI 핵심 알고리즘은 물론이고 수많은 연산을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대용량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초고속 네트워크 등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모두 아우르는 글로벌 톱3 수준의 지능화 기술역량을 확보하고자 한다.
두 번째 실행전략 목표는 국민·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AI 혁신 생태계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국가지능화를 이루려면 단순히 기술 개발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내 AI 생태계를 마련하고, 참여하는 모두가 동반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방편으로 SW와 데이터를 공유하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세 번째 실행전략 목표는 산업요구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믿을만한 AI 활용 확산이다. 구현한 AI 기술과 생태계 기반이 사회 전반에 수혈되도록 해야한다. 휴먼케어 로봇이나 협업로봇 기반과 같이 AI 기반 성과가 국가 곳곳에 스며들 수 있도록 R&D에 매진하고 있다.
-AI 실행전략, 나아가 국가지능화 실현을 위한 인적 역량은 충분한지.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ETRI에는 이미 AI 전공 석박사급 연구원이 450여명, 관련 기반 전공자가 400여명에 달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별도로 AI 아카데미를 구축해 연구원 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수준별 교육을 시행하고, 강사진도 다양하게 구성하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나 엔비디아와 같은 외부 도움을 받는 강좌도 있고, 내부 강사를 선정해 강좌를 진행 중이다. 내부 강사의 경우 AI 관련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했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실제 R&D 수행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교육이 가능하다.
조직 역시 지난해 AI 연구에 중점을 두기 위해 개편했고, 현재 안착 수준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신설한 '인공지능연구소'가 특히 큰 역할을 한다. 복합 AI, 지능형 로봇, 자율이동체, 지능형반도체, AI 슈퍼컴퓨터 등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기존 SW콘텐츠연구소의 연구분야에 지능형반도체 연구부분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영역이다. AI 관련 SW는 물론이고 HW 부분까지 아우른다.
-현재 우리나라가 국가지능화를 이루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때때로 과거의 틀을 깨는 것이 새로운 발전을 가져오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분명 ICT 인프라와 서비스, 메모리반도체를 비롯한 HW 제조 역량 부문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 다만 이것에만 경도된다면 새로운 사업모형을 찾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진정한 개척자,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서는 AI를 포함하는 SW가 기본적인 틀이 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HW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 발판을 가지고 가면서, 가장 큰 파급력을 가진 SW 원천기술의 선제 확보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정부와 기업 모두 가지고,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김명준 ETRI 원장은?
1955년 부산에서 출생한 김명준 ETRI 원장은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프랑스 낭시 제1대학에서 각각 전자계산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프랑스 국립 LORIA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유럽의 선진 연구환경을 경험했다.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한 곳은 ETRI다. 1986년부터 내리 30년을 ETRI에서 보냈다. 이 기간 동안 데이터베이스연구실장, SW연구부장, 기획본부장, SW콘텐츠연구부문 소장, 창의연구본부장 등 다양한 역할을 두루 맡았다.
수많은 연구성과와 높은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대외활동도 진행했다. 2012년에는 제27대 한국정보과학회장을 맡았고, 이듬해부터 1년 동안은 미국 리눅스재단 이사를 역임하며 명성을 더했다. 리눅스재단은 리눅스 표준을 제정하고 개발을 주도하는 기관이다. 이때 이사 역임은 우리나라에서는 당연직을 제외하고 처음 있었던 선출직 이사 배출 사례다. 김 원장은 이를 통해 세계 공개SW 산업과 커뮤니티의 운영, 경영에도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2016년부터는 국가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으로 재직하며 SW분야 전문성을 발휘했고, 지난해 원장으로 ETRI에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