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 발명으로 촉발된 산업혁명은 산업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삶을 변화시켰다. 특히 기계가 등장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기계를 파괴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를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한다.
러다이트 운동과 관련된 전설과 같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철도 노동자 존 헨리와 기계의 대결이다. 대결의 목적은 확연히 다르지만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대결한 것을 떠올려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인간과 기계 대결에 관심을 보였을지 짐작이 된다.
당시 헨리는 굴착기를 도입하려는 사업주에게 기계와의 대결을 제안하고 산 너머 반대편까지 누가 먼저 굴을 파고 나오는지 겨뤄 보자고 했다. 결과 굴착에 먼저 성공한 것은 헨리였고, 사람들은 인간의 승리에 환호했다.
그러나 헨리는 대결 후 얼마 되지 않아 숨을 거두고 말았다. 헨리 사망 원인이 탈진인지 뇌졸중인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이때부터 사람들은 기계를 이기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헨리 일화를 보면 현재 우리 뿌리기술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 떠오른다. 뿌리기술이란 나무 뿌리처럼 산업의 근간을 이룬다. 주로 핵심 생산 공정 6대 기술인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기술을 일컫는다.
뿌리기술은 산업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자동차, 전자, 조선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반기술로 여겨진다. 국내 제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열쇠와 같은 역할도 한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국내 뿌리산업은 작업자 경험에 의존하고 종래의 생산 방식을 고수하면서 정체 상태가 지속됐다. 결국 품질은 일본에 밀리고 가격경쟁력은 중국 추격에 맞서야 하는 '넛 크래커'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국내 뿌리산업은 3D 산업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작업자 고령화, 경험에 의존하는 생산 방식, 강화되는 환경 규제 등 어려운 여건에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국내 뿌리기업은 대부분이 영세, 미래 수요와 기술 요구에 맞는 혁신 역량도 부족한 편에 속한다. 이러한 뿌리산업의 문제점 해결을 위해서는 선제 기술 개발과 제조공정 효율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조공정 스마트화는 현실에 맞는 해결책 가운데 하나다. 뿌리기업 인프라 구축과 뿌리산업 비용 절감은 제조공정 스마트화의 주요 골자다. 뿌리기업은 스마트화를 통해 생산성, 안정성, 환경 개선 등 공정이 최적화된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 인력이나 에너지 절감, 환경 문제 등을 스마트 기술로 해결해 비용도 절감한다. 궁극으로는 국내 뿌리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뿌리산업과 연계된 수요 산업 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
이미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제조업의 주요 키워드로 다루고 있다. 스마트 시대에 적응해야만 살아남는 환경이 조성됐다. 인공지능(AI)과 접목된 더욱 고도화된 기계가 우리 세계로 성큼 다가왔다.
뿌리기술 위기를 헨리처럼 변화를 최소화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기계와 경쟁해서 극복하는 것이 옳은지, 오히려 기계를 활용해서 새 전환점으로 삼을 것인지 판단이 필요할 때다. 현명하고 슬기로운 판단으로 우리 산업의 근간인 뿌리산업이 탄탄해지기를 기대한다.
이병현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뿌리기술 PD bhlee@kei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