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유엔이 발표한 '세계의 도시'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50만명 이상 도시는 1146개에 이른다. 이들 도시 가운데 대전은 160만 인구로 319위이다. 그러나 이들 도시가 얼마나 혁신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순위는 달라진다. 도시의 혁신 잠재력을 파악하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국제특허(PCT) 건수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는 2017년 지역별 국제특허 건수를 헤아린 다음 순위를 매겼다. 대전 지역은 23위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 특허가 창업의 씨앗이 되어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지역경제에 공헌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면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2018년 기준으로 특허 등을 활용해 창업하는 벤처 기업 3만5985개사 가운데 대전에 소재한 기업은 3.7%인 1300여개사에 불과하다.
대전은 발명과 특허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과 대학도 30개 이상이나 된다. 수치만으로 보면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들여다보자. 텔아비브는 국제특허 건수 면에서 세계 22위로 대전과 막상막하다. 그러나 텔아비브는 이스라엘의 실리콘밸리로 불릴 정도로 혁신이 활발하다. 텔아비브 대표 연구기관인 와이즈만연구소는 기술사업화를 얘기할 때마다 모범사례로 거론되는 기관이다. 이곳은 한 해 평균 100여건의 특허를 사업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구 기능과 별도로 독립 운영되는 기술 이전 전문회사 예다(YEDA)는 연구소 기술로 인한 로열티 수입만 연간 1000억원을 벌어들인다. 성공 요인은 와이즈만연구소가 연구 지원 과제를 선정할 때 특허를 받을 수 있는지를 꼼꼼히 검토하고, 더 나아가 특허받을 수 있는 과제를 선제 발굴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벤처캐피털 대명사인 요즈마펀드도 투자 시 특허를 철저히 따지는 기관으로 유명하다. 와이즈만연구소와 요즈마펀드 특허에 대한 남다른 업무 방식과 성과가 이들 기관만의 특수한 역량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연구 지원 과제를 선정할 때 특허를 기준으로 따진다는 것은 연구자의 특허 인식이 매우 높음을 암시하며, 또 철저히 특허 조사를 해 주는 지식재산 서비스 기관이 있음을 암시한다. 벤처캐피털이 투자할 때 특허를 중점으로 본다는 것은 스타트업 구성원들이 특허를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텔아비브시에는 지식재산이라는 보이지 않은 씨줄과 날줄이 금융, 연구기관, 대학, 스타트업 등을 연결하고 꿰어 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전시가 텔아비브시의 지식재산 생태계를 하루아침에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부터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면서 대전시에 몇 가지를 제안해 본다. 첫째 특허 등 지식재산을 중요한 기준으로 하는 투자, 담보, 대출 등을 포괄하는 지식재산 금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출연연이 보유한 특허를 창업의 소재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창업의 질을 높여야 한다. 셋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기술만 좋다고 제품이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발명과 지식재산을 마케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지식재산 스토리텔러 양성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넷째 기술 수요와 공급을 이어 주는 기술 이전 서비스업, 시제품 제작과 성능을 시험해 주는 등의 연구개발(R&D) 서비스업, 지식재산과 과학기술 등에 관한 콘텐츠 창업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대전은 '4차 산업혁명 도시, 과학 도시, 지식재산 도시, 창업 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이들 4개 브랜드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지역 혁신 생태계의 모범이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
정성창 지식재산과 혁신생태계 연구소 소장 ipnomic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