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이 가동에 들어간 차세대 주전산 시스템 '더 케이 프로젝트'는 금융 시장에 다양한 의미를 던졌다. 고객이 보다 편리하고 안정된 금융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그 뒷단에 내재한 IT전산 인프라가 핵심 역할을 한다. 통상 은행을 예로 들면 10년 주기로 차세대 전산 시스템을 도입하고 빅뱅 방식 개발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KB국민은행이 화두를 던진 차세대 프로젝트는 이 같은 고정 관행을 과감히 탈피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언택트와 디지털 채널이 부상한 가운데 이에 맞는 정보기술(IT) 인프라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더 케이 프로젝트, 무엇이 다른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IT인프라의 파괴적 혁신을 시도한 첫 번째 결과물이다. 디지털 기술 기반 업무 운영 자동화, 중장기로는 IT인프라 개선을 통해 운영 비용을 대폭 절감하는 가격 파괴를 지향한다. 또 신기술을 활용해 극강의 편리함을 창출하고 고도의 데이터 분석을 통한 초개인화 맞춤 금융 서비스를 선보이는 마중물로 활용한다.
이제 전통 금융사는 빅테크라는 거대 경쟁사와 생존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과 총알이 있어야 한다. 그 무기가 될 수 있는 게 바로 차세대 시스템이다. 어떻게 시스템을 구현하고 고도화하는지에 따라 금융사 상품과 서비스가 달라진다.
더 케이 프로젝트는 THE(유일한) K(KB)가 되기 위해 KB미래 전략과 디지털 기술을 중심으로 'KB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혁신)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란 의미를 담았다.
2-스피드 추진 전략에 따라 안정적인 상품 서비스 기반 아래 총 14개 핵심 프로젝트를 구성했다. 비즈(Biz)과제 9개, IT과제 5개로 이뤄졌다.
다른 금융사와 달리 빅뱅식 차세대를 탈피, 정보계 중심으로 단계적 오픈을 시도했다. 핵심 IT인프라 교체와 병행해 여러 업무 애플리케이션(앱)을 한꺼번에 개발하는 방식과 달리 코어뱅킹은 기존대로 유지하고 정보계 시스템을 중심으로 2019년 4분기부터 단계적으로 전환을 시도했다.
비대면 채널, 마케팅, 글로벌, 상품·데이터, IT인프라 서비스 부문 등 디지털로 전환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차세대 주전산시스템을 통해 고도화했다. 콜센터는 물론 마케팅 허브 시스템, 글로벌 플랫폼, 상품 서비스계, 통합단말 시스템, 정보계 기능, 정보보호 체계, 인터페이스, 클라우드 인프라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사이버물리시스템(CPS), 빅데이터, 블록체인, 3D프린터, 클라우드 컴퓨팅, 가상·증강현실 기술 등을 모두 융합했다.
차세대 전산 시스템 가동으로 KB국민은행은 직관적이고 단순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 제공하고 기술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운영 구조를 갖추게 됐다. 특히 데이터 기반 고객 개개인 요구에 맞춘 상품과 서비스를 IT로 차별화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고객 모든 생활과 함께하는 디지털 KB'를 모토로 내걸었다.
언제 어디서든 동일하지만 차별화된 서비스를 모든 기기와 영역에서 제공하겠다는 목표다. 지점 등에서 사용하는 통합 단말기는 물론 인터넷·모바일 서비스, 콜센터, 대외기관, 자동화기기, 통합인증 등에서 소비자가 가장 직관적이고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통상 거기서 거기인 금융 상품 베끼기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KB금융타운, IT로부터 출발
국민은행은 여의도 내 여러 본점을 두는 KB금융타운을 지향한다. 더 케이 프로젝트 추진 과정을 면밀히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차세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다. 국민은행도 여의도와 전경련 근무지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고비가 있었다.
그럼에도 여의도센터 동·서관, 전경련, 김포 통합IT센터, 염창센터로 분산된 근무형태를 갖춰 확산과 피해를 최소화했다.
차세대 전산 시스템 개발, 운영 과정에서도 영상회의나 협업툴을 적극 도입했다. 윤종규 회장과 허인 행장의 남다른 디지털 투자가 병행됐기 때문이다.
실제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망분리 예외 규정을 적용받는 재택근무 체계를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이 국민은행이다. 코로나19 특별 방역 기간 동안 진행된 그랜드 오픈시,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인력 공백 최소화를 위해 지난 9월 독산동과 양천에 디지털 오피스를 추가 가동했다. 여의도 종합상황실을 통해 영상회의 등으로 모든 작업이 이뤄졌다. 분산근무 중인 각 사이트에서 동시, 병력적으로 작업을 수행해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적시 대응한 차세대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순차 오픈이라는 다소 파격적 실험도 소기 성과를 달성했다. 더 케이 프로젝트 구축 범위 중 영업점 단말(계정계·정보계), UI/UX 개선, 빅데이터 인프라 강화, 콜센터 전환, 클라우드 운영 환경 사업을 이전에 순차 오픈했다.
결국 더 케이 프로젝트는 통상 차세대 시스템 구축에 비해 적은 비용과 짧은 개발 기간으로 정부 근로기준법에 부응하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적시 대응 체계를 동시 만족한 1호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업 계약 방식도 기존 주사업자에 전 영역을 위임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프로젝트별로 개별 방식 비중을 높였다.
발주사인 은행 프로젝트 관리, 개발 영역 참여를 확대해 향후 운영 과정에서도 민첩한 애자일 체계를 가동하고 각 사업별 수행사를 별도 선정함으로써 리스크를 분산시킨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우열 국민은행 IT그룹 대표(CIO)는 “이제 미래 금융산업 경쟁력은 규모가 아닌 스피드와 디지털 혁신 여부”라며 “정부 마이데이터 사업에 대응해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AI 등 다양한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시스템에 녹여 안정성과 보안성 모두를 충족하는 IT인프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