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지난 8월 도입된 벤처투자촉진법(벤촉법)이 오히려 벤처캐피털(VC)의 신규 펀드 결성을 막는 문제를 낳고 있다.
벤촉법에 따르면 창업기획자(액셀러레이터)는 사모펀드(PEF)의 신규 조성이 불가능하도록 규정됐다. 다양한 방식의 투자를 위해 취득한 자격이 오히려 다른 큰 사업을 막는 조치가 되고 말았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지했지만 이미 초기투자를 맡는 액셀러레이터의 등록 취소가 이어지는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캡스톤파트너스는 최근 엑셀러레이터 등록을 자진 말소했다. 지난달 포스코기술투자가 자격을 반납한데 이은 두 번째 사례다. 업계 상위 VC를 중심으로 액셀러레이터 반납이 이어지는 이유는 법에 명시된 액셀러레이터 관련 행위 제한 조항이 기존 사업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은 팁스(TIPS·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주체를 액셀러레이터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창투자 등 기존 팁스 프로그램 운용사가 액셀러레이터 등록을 늘렸다. 올해 들어서면 60개 이상의 등록이 늘면서 전체 액셀러레이터 수는 8월 기준 272개사로 급증했다.
하지만 정작 액셀러레이터의 활동을 규정한 벤촉법이 발목을 잡았다. 벤촉법에서는 액셀러레이터가 경영참여형 사모투자집합기구(PEF) 또는 신기술금융사의 지분을 취득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 과정에서 액셀러레이터와 창업투자회사를 동시에 등록한 회사에 대한 행위 금지 조항을 두고 혼선이 벌어졌다. 정부 차원의 명확한 해석은 아직까지 없다.
대다수 VC는 팁스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액셀러레이터 자격을 확보해 왔다. 초기 단계기업부터 기존 주력 사업인 사모펀드 투자까지 연결성을 갖기 위해서다.
하지만 벤촉법이 그 연결고리를 끊었다. VC 입장에선 초기 단계의 연계투자를 위해 취득한 액셀러레이터 자격이 오히려 규모가 훨씬 큰 성장 단계 투자를 막는 결과에 직면한 것이다.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이미 팁스 프로그램으로 30여개 업체를 발굴해 온 캡스톤파트너스가 액셀러레이터 자격을 반납했다. 포스코기술투자는 자격취득 한 달 만에 등록을 말소했다. 신규 펀드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벤촉법의 불명확한 규정을 파악한 뒤 이뤄진 조치다.
이 밖에도 KB인베스트먼트 등 팁스 운용사 다수가 액셀러레이터 반납 여부를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벤처투자촉진법이 오히려 초기 창업 투자를 위축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면서 “정부의 정확한 상황 진단과 빠른 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도 문제를 인지한 상태다. 다만 유권 해석이 이뤄지더라도 당분간 투자 시장 혼선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 규정이 본 법안과 시행령 등에 흩어져 있어 내용을 정확히 살펴야 한다. 또 결국은 국회에서 법 개정을 위한 후속 절차가 추가로 이뤄져야 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법률 제정 과정에서 미처 확인하지 못한 점이 있어 문제가 발생한 상황”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유권해석 등의 방식으로 시장에 가이드라인을 주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