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8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강조한 부분은 '재정 역할'이었다. 세계적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우리나라가 선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봤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통해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67조원) 등을 통해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코로나19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내년도 예산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선도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매우 엄중한 시기에 비상한 각오와 무거운 마음으로 내년도 예산안을 국민과 국회에 말씀드리게 됐다”며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삶을 지키고 국가의 미래를 열기 위해 재정의 역할이 더욱 막중해졌다”며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국난극복과 선도국가로 가기 위한 의지를 담아 555조8000억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본예산 기준 8.5% 늘린 확장 예산(추경 포함 0.2% 상승)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선전할 수 있었던 요인을 확장 재정 등에서 찾았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로 인해 경제활동 근간이 무너지고 세계 경제는 불황의 늪에 빠졌다. 대공황 이후 인류가 직면한 최악의 경제위기”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대한민국은 '위기에 강한 나라'임을 전 세계에 증명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국민 동참 △K-방역 등 방역당국과 의료진 헌신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 △국회 협치를 성과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경제위기 극복에 협력해준 국회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린다”며 앞서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 통과에 대한 사의도 표했다.
방역과 경제에서의 선방을 내년도 정부 예산안으로 확실히 못 박아야 한다고 한 것 역시 경제 부문에서 '희망'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올해 1~2분기 역성장 늪에서 3분기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 자신감의 원천이다.
특히 '8월의 뼈아픈 코로나 재확산'을 또다시 언급하며 “그 타격을 견뎌내면서 일궈낸 성과여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제출하는 2021년 예산안은 '위기의 시대를 넘어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예산”이라며 경제회복과 선도형 경제 전환, 혁신과 포용,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의지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예산안에 따라 국민 안전을 위한 K-방역 예산이 1조8000억원으로 편성됐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예방-진단-치료 전 주기 방역시스템'을 강화한다. 감염병 전문병원 세 곳 신설을 비롯해 호흡기 전담 치료시설 500곳을 추가 설치한다.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을 위한 지원도 확대한다.
이날 시정연설에서 처음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제시한 것도 눈에 뛴다.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을 더했을 때 온실가스 순 배출량이 0인 상태를 의미한다. '넷제로' 또는 '탄소제로'로도 불린다. 탄소중립 선언은 특정 시점까지 탄소제로를 만들겠다는 국가적 선언이다.
앞서 유럽연합(EU)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2050년 탄소제로 달성을 선언한 상태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도 지난달 시진핑 국가주석이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최근 각 국에서 2050년 목표 탄소제로 선언이 잇따르는 건 국제연합(UN)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18년 '1.5도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전 세계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적어도 45%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을 해야 한다”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안보 분야 및 대북정책에서도 재정 역할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강한 안보가 평화의 기반이 된다는 것은 변함없는 정부의 철학”이라며 “정부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국가안보의 최후 보루인 국방 투자를 더욱 늘려 국방예산을 52조9000억원으로 확대했다”고 말했다.
전방위 안보위협에 대비한 첨단 전력을 보강하고, 핵심기술 개발과 부품의 국산화를 위해 집중 투자한다. 전투역량 강화를 위해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에 기반한 과학화 훈련, 개인 첨단장비 보급 등 스마트군 육성을 위한 투자도 크게 늘린다.
북한에 대해선 “연결된 국토, 바다, 하늘에서 평화는 남북 모두를 위한 '공존의 길'”이라며 “사람과 가축 감염병, 재해 재난 극복을 위해 남과 북이 생명·안전공동체로 공존의 길을 찾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평화로 가야 한다. 강한 국방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모색하겠다”고 다짐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