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회장 취임 후 처음으로 노조와 만나면서 현대차의 노사문제가 '해빙 무드'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이번 만남은 이전까지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그동안 노조가 수차례 요구해온 '회장·대표이사·노조지부장' 등 3자 회동 성사는 이례적이다. 그룹 안팎에서는 자동차산업이 격변기를 맞아 노사가 함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안정적 노사관계가 첫 발을 내디뎠다고 평가한다.
3일 현대차에 따르면 정 회장은 지난 달 30일 울산공장에서 하언태 사장, 이원희 사장 등 경영진과 함께 이상수 현대차지부장과 오찬을 하며 면담을 진행했다.
현대차그룹 총수가 노조와 직접 만남을 가진 것은 20여년 전의 일이다. 정몽구 명예회장도 취임 초반에 노조와 만난 적이 있지만, 2000년대 들어 노조의 지속적 면담 요청에도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 회장도 2007년 기아차 사장 당시 노조와 만난 후 공식 면담을 갖지 않았다.
현대차 노사는 최근 들어 전향적 모습을 보여 왔다. 현대차 노사는 올해 임금 협상에서 11년 만에 임금을 동결하는 파격적 결정을 했다. 2년 연속 무분규 합의였다. 매년 임금 협상 과정에서 반복됐던 파업도 없었다. '코로나19'로 불확실성이 커진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서 상생 경영의 필요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노사가 임금 협상 과정에서 채택한 '노사 공동발전 및 노사관계 변화를 위한 사회적 선언'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날 이상수 지부장은 자리를 마련해준 정 회장 등에게 감사인사를 전했으며, 1시간 반 가량 이어진 오찬 자리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격의 없이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정 회장의 적극적 행보로 내년 현대·기아차가 선보이는 핵심 전략 모델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현대차 노사는 앞서 울산공장 내 전기차 전용라인 설치를 위한 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정 회장이 노조와의 만남 자리에서 “전기차로 인한 신산업 시대에 산업의 격변을 노사가 함께 헤쳐 나가야 한다”며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방안을 노사가 함께 찾자”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상수 지부장은 “품질 문제에 있어 노사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함께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이번 만남은 완성차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과 맞물린 발전적 노사 관계 전환의 시도로 분석된다. 자동화로 대변되는 미래차 시대에 효율적 인력 배치와 품질 향상은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물론 이런 노사 상생 행보를 계열사로 확산하고, 이어가는 것은 정 회장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중 하나다. 실제 현대차와 달리 기아차와 현대제철, 현대로템, 현대위아 등 대다수 계열사가 현재 임단협 교섭에 난항을 겪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정 회장 등 경영진이 노조 지부장과 가진 오찬 간담은 자동차 산업 격변기를 맞아 노사가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국내 공장의 미래 경쟁력 확보와 재직자의 고용 안정을 바탕으로 미래 산업 변화에 대응하려는 전략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