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의선의 결단...국내 경쟁사와 '부품협력' 속도낸다

현대트랜시스, 쌍용차 렉스턴에
파워트레인 핵심 8단 변속기 공급
현대·기아차 등 계열사 중심 탈피
글로벌 부품사로 성장 의지 담아

현대트랜시스 8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한 쌍용차 신형 렉스턴.
현대트랜시스 8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한 쌍용차 신형 렉스턴.

현대차그룹 파워트레인 전문 계열사 '현대트랜시스'가 쌍용차 신형 렉스턴에 8단 자동변속기를 공급한다. 현대차그룹이 국내 경쟁사에 파워트레인 핵심 기술인 최신형 자동변속기를 공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공급은 정의선 시대를 맞은 현대차그룹 핵심 부품사가 현대·기아차 등 계열사 공급 중심의 수직계열화 체계에서 벗어나 다른 완성차업체로 공급을 확대, 글로벌 부품사로 성장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향후 쌍용차가 개발할 전기차 등 다른 차종으로도 파워트레인 공급과 협력이 확대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신형 렉스턴 8단 자동변속기 전자식 기어노브.
신형 렉스턴 8단 자동변속기 전자식 기어노브.

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트랜시스는 쌍용차와 신형 렉스턴 후륜 8단 자동변속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트랜시스가 개발해 지곡공장에서 생산하는 이 변속기는 신형 렉스턴에 탑재돼 4일부터 본격 판매에 들어갔다. 구체적 공급 물량이 공개되진 않았으나, 지난해 렉스턴 판매량을 고려하면 연간 공급량은 최소 1만5000대분 이상으로 추산된다.

현대트랜시스는 지난해 현대파워텍과 현대다이모스를 합병한 현대차그룹 핵심 계열사로 변속기를 중심으로 한 파워트레인, 시트가 주력 제품이다. 연간 파워트레인 생산능력은 893만개, 지난해 매출액은 7조7000억원 수준이다. 아직 현대·기아차 공급 의존도가 높지만 최근 비야디(BYD), 둥펑샤오캉과 협약을 맺는 등 중국을 중심으로 해외 고객사 확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트랜시스 후륜 8단 자동변속기.
현대트랜시스 후륜 8단 자동변속기.

현대차그룹이 엔진과 함께 파워트레인 핵심 기술로 꼽히는 최신형 변속기를 국내 경쟁사에 공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동안 현대트랜시스는 수출용 등 쌍용차 일부 차종에 소량의 수동변속기만 공급했다. 과거 쌍용차는 코란도, 티볼리 개발 과정에서 현대파워텍과 자동변속기 공급을 타진했으나, 실제 계약이 성사되진 않았다. 당시 현대차 최고경영진 반대가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형 렉스턴에 공급하는 8단 자동변속기는 제네시스를 비롯한 현대·기아차 신차에 장착돼 성능과 품질을 인증받은 최신 제품이다. 이 제품은 제네시스 G70·G80·G90, 기아차 K9과 스팅어, 모하비 등에 탑재된다. 변속기 다단화를 통해 연비와 변속 성능을 개선하고 정숙성, 내구성을 높였다. 신형 렉스턴 공급용도 제품 자체는 같지만 차량 특성에 따라 세팅 값 등을 최적화했다.

현대트랜시스 지곡공장 전경.
현대트랜시스 지곡공장 전경.

쌍용차는 수입산 대신 국산으로 변속기를 대체하면서 국내에서 더 안정적 생산 기반을 갖출 수 있게 됐다. 기존 렉스턴은 독일 메르세데스-벤츠로부터 7단 자동변속기를 공급받았다. 현재 코란도 등은 일본 토요타 계열사 아이신 제품을 쓰고 있다. 수입산 부품은 코로나19와 같은 악재가 발생할 경우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실제 쌍용차는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에 올해 코로나19까지 악재가 잇달아 터지면서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업계는 이번 계약 체결 배경으로 정의선 회장을 비롯한 현대차그룹 최고경영진의 결단은 물론 예병태 쌍용차 사장의 역할이 주효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982년부터 현대차에 근무한 예 사장은 기아차 유럽 총괄법인 대표, 현대차 상용사업본부장 등 핵심 요직을 거친 현대맨이다. 예 사장은 2018년 쌍용차에 합류해 마케팅본부장을 맡았고 지난해 3월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자동차 부품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쌍용차와 손을 잡은 것은 완성차 개발과 생산을 뛰어넘어 글로벌 시장을 아우르는 모빌리티 서비스 제공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현대차그룹의 달라진 경영 기조를 보여준다”면서 “현대차와 쌍용차 간 핵심부품 공급에 물꼬가 트임에 따라 향후 파워트레인, 전동화 등 분야에서도 협력관계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