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장이든 3위는 생존을 위한 커트라인이다. 3강 안에 들지 못하고 의미있는 성과는 불가능하다. 시장 3위까지는 손쉽게 꼽지만, 이후부터는 기억조차 못한다.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는 오늘날 기업 경영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국내 가전 시장. 삼성전자와 LG전자라는 글로벌 종합 가전기업이 강력한 경쟁력을 내뿜고 있지만, 각 품목별로 보면 탄탄한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위니아전자, 캐리어에어컨, 코웨이, SK매직, 쿠쿠, 쿠첸, 휴롬 등 기업은 자신들의 주력 사업 분야에서 독보적 입지를 갖췄다.
기업에게도 1등이 독주하거나 양강 체제로 이뤄진 시장보다 3각 경쟁 체제의 장점이 많다.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혁신 경쟁을 강화하면서 시장이 활성화되고, 소비자 선택권도 넓어진다.
각 가전 영역에서 3각 경쟁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분석해봤다.
한국에만 있는 특수가전 '김치냉장고'. 1990년대만 해도 김치는 마당 한 켠에 항아리를 묻고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주거 문화가 아파트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더 이상 김치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졌다. 1995년 '딤채'가 이 틈을 공략하면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지금도 김치냉장고하면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브랜드가 '딤채'일 정도다.
국내 최초의 김치냉장고는 1980년대 등장했다. 1984년에 금성사(현 LG전자), 1985년에 대우전자가 각각 김치냉장고를 선보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김치냉장고가 다시 등장한 것은 1995년이다. 당시 만도기계(현 위니아딤채)가 '딤채'를 출시했고,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땅속에 묻는 항아리를 집 안으로 옮긴 뚜껑형 제품으로 주부들의 '워너비(wannabe)' 제품으로 등극했다.
김치냉장고가 인기를 끌면서 삼성전자가 1998년에, LG전자가 1999년에 각각 시장에 진입했다. 삼성과 LG의 진출에도 불구하고 김치냉장고는 여전히 '딤채'가 주도했다.
시장 판도에 변화가 생긴 것은 스탠드형이 등장하면서다. 뚜껑형에 비해 용량이 크고, 김치 외에도 다양한 식품을 보관할 수 있는 편리성으로 인해 스탠드형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스탠드형에 집중하면서 김치냉장고 시장 주도권을 키웠다.
현재 김치냉장고 시장은 스탠드형이 대세가 되고 있다. 2016년부터 스탠드형이 뚜껑형을 넘어섰고, 현재는 70~80%가 스탠드형인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건폐율이 높은 뚜껑식보다는 용적률을 높인 스탠드형이 집안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서 “허리를 덜 숙이게 돼서 인체공학 관점에서도 스탠드형이 앞서 있다”고 말했다.
시장 구도는 삼성전자, LG전자, 위니아딤채가 황금 분할하고 있다. 각 사별 시장 점유율은 금액 기준으로는 삼성전자가 선두지만, 3개 업체 모두 30% 내외를 기록할 정도로 차이가 크지 않다. 대수 기준으로는 딤채가 가장 앞서 있다.
3사는 각각 차별화된 강점을 내세워 시장 주도권 확대를 노린다.
삼성전자는 초정온 메탈쿨링 기술 등을 이용해 0.3도 이내의 펀차로 김치숙성이나 보관을 해주는 것이 강점이다. 또 김치 외에 열대과일, 뿌리채소 등 다양한 식자재를 전문 보관할 수 있는 편리성도 갖췄다. 여기에 비스포크 김치냉장고를 통해 비스포크 냉장고하고 세트처럼 설치할 수 있고, 다양한 색상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비스포크 김치플러스 신제품은 19종의 도어 패널을 선택할 수 있고, 프리스탠딩 4도어와 키친핏이 적용돼 빌트인 효과를 낼 수 있는 3도어·1도어 등 총 3가지 타입이다. 비스포크 김치냉장고는 디자인 측면에서도 우수하지만 다른 냉장고와 같이 조합해 설치할수 있어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준다는 점에서도 장점이 있다.
LG전자가 내세우는 강점은 차별화된 신선기능인 '뉴(New) 유산균김치+'다. 이 기능은 중간 칸은 물론 위쪽 칸까지 가능해 더 많은 양의 김치를 신선하게 보관하게 해준다. 뉴 유산균김치+는 김치맛을 살려주는 유산균을 일반 보관모드에 비해 최대 57배까지 늘려주고 김치를 오랫동안 맛있게 보관해준다. CJ제일제당과 협업한 '인공지능 맞춤보관'도 올해 적용한 신기능이다. 이 기능은 사용자가 구매한 CJ제일제당 포장김치를 인식해 최적의 보관방법을 찾아준다. 일반 인버터 컴프레서보다 효율이 약 18% 우수한 리니어 컴프레서도 강점이다.
김치냉장고의 원조 위니아딤채는 10대 김치 맞춤형 숙성 모드 등 전문 숙성 기능이 강점이다. 기존의 맞춤 숙성 모드에 파김치, 오이소박이, 갓김치 메뉴를 추가해 김치 종류마다 최적의 숙성 기능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김치 보관에 최적화된 뚜껑형 시장에서는 현재도 점유율이 50%에 육박한다.
김치냉장고에 다양한 식재료를 보관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다양한 주류 보관 기능을 갖췄고, '소주 슬러시' 메뉴도 제공한다. 이유식 재료와 샐러드의 맞춤 보관 및 고기의 감칠맛을 살리는 빙온숙성 모드도 특징이다. 2021년형 딤채 뚜껑형 모델은 용기를 꺼낼 때 '오토 리프트' 기능을 제공해 무거운 김치도 쉽게 들어올릴 수 있도록 했다.
김치냉장고 3사의 황금분할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누가 시장을 치고 나갈지 흥미진진하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