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벤처기업에 대한 복수의결권 도입 논의가 국회로 넘어갔다.
복수의결권은 정부가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의 창업주에게 다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대규모 자금조달 이후에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소수주주의 권리 보호, 무능력한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보호 등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여당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일부 야당과 벤처캐피털(VC) 등 투자자를 중심으로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여당 내부서도 '보완론', 정부·제1야당에선 '환영'
11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오는 30일까지 비상장 벤처기업에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정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준비중이다. 다음달 중으로 국회에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달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복수의결권 주식 도입을 위한 방향을 정했다. 비상장 창업기업의 창업주에게 1주당 최대 10개의 복수의결권 발행을 허용하고, 보통주 전환과 복수의결권 유지와 행사를 제한할 수 있는 요건 등이 핵심으로 담겨 있다.
정부가 복수의결권 도입에 대한 공식 방침을 내놓자 일부 여당 의원과 정의당, 시대전환 등 야당을 중심으로 반발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류호정·배진교 정의당 의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등은 지난달 정부 발표 직후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복수의결권 도입 방안에 대한 보완과 속도 조절을 요구했다.
류호정 의원실 관계자는 “앞서 열린 토론회에서 지적한 문제점 등을 고려해 중기부가 정부 입법안을 발의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현재로서는 입법예고가 진행 중인 만큼 다음달 정부 입법안이 발의되는 상황을 살펴 의견을 내겠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여당 내부에서 불거진 속도 조절론과 추가적인 사회적 합의 요구 등에 따라 현재 정부가 제출할 법안은 국회에서 얼마간 손질이 불가피하다. 다만 앞서 민주당이 복수의결권 도입을 총선 2호 공약으로 밝힌 데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서도 복수의결권 도입에 힘을 싣고 있는 만큼 국회에서 큰 틀의 합의가 이뤄질 공산이 크다.
실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공정거래 3법 추진에 따른 재계의 반발에 복수의결권과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도입이라는 카드를 꺼내 맞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복수의결권, CVC 허용 등 벤처기업 지원을 위한 법안이 향후 악용될 수 있다는 내부의 의견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서 “보완방안을 국회에서 충분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수주주 보호, 대기업 남용 방지...핵심 쟁점은
비상장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한 복수의결권 도입의 핵심 쟁점은 제도 도입을 계기로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차후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여당 일각과 정의당 등에서도 이런 부분을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다.
실제 정부가 내놓은 입법예고안에는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한 벤처기업이 대기업에 편입되는 경우에는 복수의결권 주식을 보통주로 전환하도록 하는 등의 요건을 담았다. 하지만, 대기업 계열 바깥의 경우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예컨대 대기업 일가의 창업주가 사모펀드 등을 우호 지분을 확보해 복수의결권 발행, 경영권을 강화할 경우 마땅히 막을 방법이 없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서보건 민변 변호사는 “구체적 제도 설계에서 상법상 주주 평등 원칙에 반하는 점 등의 문제점을 뛰어넘을 만큼 우리 경제에 이로움이 있는지를 우선 살펴야 한다”라며 “충분히 예상되는 악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수주주의 권리 보호 역시 제도 도입 이전부터 줄곧 이어지던 문제다. 특히 1주 1의결권이라는 상법의 원칙을 훼손하고 개별법에서 별도의 주식을 도입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창업자의 과도한 권한 집중을 발생시킬 수 있는 만큼 의결권을 다수 확보한 창업자의 사익 추구 가능성도 제기된다.
결국 예상되는 것은 기존 기관투자자와 소수주주의 반발이다. 실제 초기 투자 시장 일부에서는 복수의결권 발행 허용으로 인해 초기 투자 시장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초기 투자기관 사이에서는 큰 성장이 예상되는 스타트업 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투자자 일부가 공동창업자로서 등기임원으로 참여하는 방안까지도 적극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안은 공동창업자에게도 복수의결권주식 발행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복수의결권 도입으로 혜택을 보는 벤처기업, 스타트업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도 단골 지적 가운데 하나다. 국회 안팎에서는 복수의결권 도입으로 실질 혜택을 보는 기업의 수가 불확실하다는 시각도 있다. 복수의결권 도입을 지속 요구한 민간 협단체 역시 뚜렷한 근거는 없는 상황이다.
결국 업계에서는 복수의결권이 결국 보완을 거쳐 도입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미 미국을 비롯해 홍콩, 중국 등 다수의 국가에서 자국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복수의결권을 비롯한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고 있어서다.
중기부 관계자는 “입법예고 과정에서 국회와 관계부처 논의 등을 거쳐 대기업의 악용과 경영주의 사익 추구 등 남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