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비상장 벤처기업에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기로 하면서 관련 업계에서도 찬반 의견이 거세다. 지속적으로 복수의결권 도입을 주장해온 벤처·스타트업 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초기 투자자, 학계 등에서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들은 도입 요건, 유예기간 등 보다 섬세한 보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복수의결권 주식은 의결권이 '복수'다. '의결권은 1주마다 1개로 한다'는 현행 상법에 따라 그간 발행할 수 없었다. 그간 벤처·스타트업계에서 대규모 투자를 받아 지분이 희석될 경우 안정적인 경영이 어렵다는 불만을 제기하면서 정부가 도입을 추진해 왔다.
정부는 우선 창업주로서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자에게만 발행하도록 했다. 또 창업주가 여러 명일 때는 이사로 재직 중인 창업주의 지분을 합해 50% 이상 최대주주 요건을 충족하면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했다. 발행 요건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창업주 지분이 30% 밑으로 떨어지거나 최대주주 지위를 상실한 경우 등이다.
정부는 남용을 막기 위해 업주가 이사를 사임하거나 복수의결권을 상속·양도하는 경우에는 복수의결권이 보통주로 전환되도록 했다. 또 기업이 상장할 경우에는 3년 유예기간을 두고 보통주로 전환한다.
벤처·스타트업 업계는 복수의결권 주식 제도가 스타트업의 건전한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보지만, 벤처투자업계는 투자자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다 우리나라 환경에 도입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특히 업계는 누적투자 100억 원 이상이란 요건을 두고 의견이 크게 갈린다. 최근 시리즈 A단계에서도 100억 유치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복수의결권 발행을 남발할 여지가 많다는 주장이다. 반면 스타트업계는 100억원의 투자유치금이라는 문턱도 더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내 A스타트업 대표는 “차등의결권의 부재는 신규 투자를 제한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로, 지분 방어 때문에 억지로 회사 벨류를 부풀리게 되고 그러다보니 회사 후속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경영 이해도가 높은 창업자에게 의결권을 좀 더 줘서 비즈니스 성장에 힘을 실어주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창업자의 경영권 유지에 도움되고 투자활성화에도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찬성”이라면서도 “경영자가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도록 이사회 등의 견제 프로세스는 반드시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상장 이후 3년 유예기간을 두고도 투자 업계는 너무 길다는 입장을, 스타트업계는 더 길어야 한다는 상반된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학계에서도 이 부분을 놓고 향후 형평성 논란이 크게 일 것으로 보고 있다. 비상장 벤처 기업이 아닌 상장된 일반 기업들에겐 역차별 규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 발표가 있자마자 규모가 비슷한 코넥스 상장사들에게도 허용해 달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 경영대학 교수는 “정부가 선진국에서 이미 도입한 제도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사실 많은 선진국에서는 복수의결권을 원 포인트로 주는 경우가 많고, 재무재표의 투명성이 담보되어 있는 상황에서 허용된 것”이라며 “그렇지 않은 우리나라에 차등의결권을 먼저 주면 투자시장은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